내년 1~2월에 방송할 미니시리즈를 준비중이다. 3년째 한 해에 한 편씩 미니시리즈를 쓰고 있는데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가끔 이런다.“네가 부러워. 일 년에 두 달만 일하고 나머지는 여행다니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출퇴근도 없고….”
미니시리즈 준비에 걸리는 기간은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방송 기간 두 달까지 포함해 대략 7개월 이상.
어떤 인물을 등장시키고 어떤 얘기로 할 것인가에 대한 윤곽을 잡고 연출자와 방향을 맞추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취재를 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하는데 특히 방송 두 달 전과 방송하는 두 달, 4개 월은 정말 사투의 시간이다.
밤샘은 다반사고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칩거하며 방송이 끝날 때까지 피 말리는 싸움을 한다.
MBC가 내년 1월부터 방송할 ‘그 햇살이 나에게’의 배경으로 동해의 어판장과 쇼핑채널이 나오는데 홈쇼핑 회사 세 군데와 주문진항, 대포항, 동명항을 취재 다녔다.
교양정보프로가 아닌 만큼 취재한 내용은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다. 하지만 문제집 다 풀고 아침밥 든든히 먹고 간 시험장에서처럼 충실한 취재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된다.
‘맛있는 청혼’ 땐 중국 요리학원에 6개월을 다녔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 이번 주인공을 떠올리게 해준 건 1998년1월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만난 한 소년이다.
낮에 자갈치 시장에 갔는데 어디선가 그 곳에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무더기 삼천 원! 함 보고 가이소. 한 무더기 삼천 원!”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보니 중학교 1학년쯤 됐을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서서 꽝꽝 언 잡어를 팔고 있었다. 딱히 가게가 있는것도 아니고 사람들 다니는 길목 한 모퉁이에서 그 소년은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댔다.
가만히 들어보니 목소리도 이미 시장통에서 득음(?)을 한 듯트여 있었다.
소년에게서 광채가 났다. 난 그 애가 너무 좋아서 자꾸만 뒤돌아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3,000원 어치를 사주면서 얘기 좀 해봐야지 하고 다시 돌아갔을 땐 이미 물건을 팔고 사라진 후였다.
그 소년의 잔상이 계속 머리와 가슴에 남아 있다가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 이미지로 빌려왔다.
극의 전개상 그 소년은 여자 주인공(김소연 분)으로 바뀌었고 출생의 비밀까지 입혀졌지만 본질은 그 때 시장에서 맑게 외치던 그 소년의 모습이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 있을 터…. 이번 ‘그 햇살이 나에게’의 주인공이 자신에게서 따온 모습이란 걸 이 글을 보게 되면 알 수 있을까.
/김인영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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