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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 생애 첫 천하장사 황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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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 생애 첫 천하장사 황규연

입력
2001.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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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로 정상 올라…눈물 흘린건 처음"‘풀은 바람에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서지만 꼿꼿함을 자랑하는 대나무는 언젠가는 부러지게 마련이다. 강호의 세계에서도 진정한 강자는 부드러움을 알아야 한다.’ 황규연(26ㆍ신창)이 16일 열린 2001 천하장사 결정전에서 김영현(25ㆍLG)을 아슬아슬하게 누르고 승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학창시절 읽었던 무협지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217㎝, 155㎏의 거구로 씨름판에서 ‘골리앗’이라 불리는 김영현과 187㎝, 135㎏으로 백두급에서는 가장 ‘왜소한’ 황규연의 대결은 누가 봐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두 판씩 주고받은 뒤 맞선 운명의 다섯번째판. 둘은 거의 동시에 모래판에 쓰러졌다. 승리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체공시간을 길게 만든 황규연의 몫.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유연함이었다. 그 유연함을 앞세워 황규연은 생애 처음이자 새 천년 첫 천하장사의 자리에 올랐다.

17일 만난 황규연은 “훈련 도중 벤치프레스를 하다 보면 다른 선수들은 100㎏ 가까이 척척 드는데 나는 80㎏만 넘어가도 쩔쩔 맨다. 타고난 씨름꾼은 아닌 모양이다”라며 멋쩍게 웃는다. 사실 150㎏이 넘는 씨름꾼이 흔한 모래판에서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황규연이 버티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알몸으로 부딪히는 원시적인 스포츠에서 체중은 곧 파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규연에게는 부드러움이 있지 않는가. 부드러움은 다양한 기술을 걸 수 있는 원동력. 이번 천하장사 결정전에서도 황규연은 잡채기, 뿌려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구사, 관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래서 힘으로만 버티고 밀어내는 단순한 기술이 대부분인 요즘의 씨름판에서 황규연은 어느덧 그의 스승이었던 이만기의 뒤를 이어 기술씨름의 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장사의 눈물

천하장사에 오른 직후 펑펑 눈물을 쏟아낸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황규연은 쑥스러운 듯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샅바를 잡았지만 모래판에서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라며 “그 동안의 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만 했다. 황규연 스스로도 우승 소감에서 밝혔듯이 ‘하늘이 선택한다’는 천하장사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도대체 무엇이‘장사의 눈물’을 만들었을까.

황규연이 처음 샅바를 잡은 때는 초등학교 5학년. 이유는 뜻밖에도 “몸이 약하다”는 주변의 걱정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유연성만큼은 남달랐지만 씨름판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1995년 10월 세경씨름단을 통해 프로무대에 데뷔했지만 현대에서 간판스타 이태현 대신 퇴출당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세 차례(세경, 현대, 삼익)나 둥지를 옮기는 불운을 겪었다.

팀을 자주 바꾸는 바람에운동에 몰두하기 어려웠고 당연히 좋은 성적이 나올 수가 없었다. 데뷔 5년만인 99년 6월 구미대회 백두봉 정복이 고작이었다. 가혹한 시련은 근성을키워주었다. “2인자였기 때문에 이리저리 밀려다녔다고생각한다. 인생도 마찬가지겠지만 순식간에 승부가 결정되는 씨름판에서 2인자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냉엄한 진리를 깨달았다.”

지난 해 2월 신생팀 신창에 둥지를 틀고 나서야 간신히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었다. 3월 훈련중 허리부상을 당해 고비를 맞았지만묵묵히 훈련에만 몰두했고 마침내 6월 광양 지역장사와 10월 영암 백두장사에 차례로 오른 데 이어 자신을 내쳤던 현대의 연고지 울산에서 현대선수들을차례로 꺾고 천하장사에 오르며 ‘황규연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고독한 승부사

인터뷰 도중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반지를 자꾸 쳐다보자 그는 뜻밖에도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순식간에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승부가 반복되는 씨름판은 정말 외로운 곳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반지를 끼고 난 후 아무리 큰 경기가 있어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는 우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내성적인 성격이다. 하루 네 끼를 먹지만 고교시절한 끼에 냉면그릇으로 두 번씩 밥을 먹어서 그런지 지금은 공기밥 한 그릇 정도만 비운다. 1년 내내 대회가 있어 잠시도 훈련을 게을리 할 수 없지만시간이 나면 역사소설과 추리소설을 틈틈이 찾는다. 승부사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담금질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씨름꾼은 자신의 몸을 속일 수 없다. 그만큼 연습이 중요하다. 연습을 꾸준하게 해야만 기술을 걸 수있고 힘도 몸에 밴다.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연습보다 중요하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이기지 못한다.”

●황규연은 누구

생년월일 1975년 12월10일 서울생.

체격조건 187㎝ 135㎏

가슴둘레 128㎝

허리둘레 107㎝

허벅지둘레 79㎝

신발 290㎝

출신교 서울 독산초등학교-연신중-동양공고-인제대

팀 세경(95년10월)-현대(97년1월)-삼익(99년7월)-신창(2002년2월)

특기 들배지기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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