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기싱은 한 권의 수상록으로 영국문학사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젊었을 때 그는 고서점의 단골이기도 했는데,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에는 헌책방에 드나들던 자신의 청년상이 묘사되어 있다.
가난했으나 고전학자로 촉망 받던 이 맨체스터 오웬스대학의 장학생은 한 번의 연애사건으로 안쓰럽게도 삶의 길이 달라지고 말았다.
어느 날 공원에서 산책하던 4학년생 기싱에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말을 건네온다.
외로운 공부벌레였던 그는 사랑에 빠졌으나 그녀는 창녀였다. 그 후 대학에서 절도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모범생 기싱으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에서 말했다. "그 아가씨는 '재봉틀 한 대만 있으면 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다' 고 말했다. 나는 재봉틀 한 대를 사주고 싶었다."
기싱의 수상록에는 헌책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점심 사먹을 돈을 지불한 크리스찬 하이네의 '티불루스' ,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1792년 10월 4일 독파' 라고 전 소유자가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팔리면 어쩌나 마음 조리다가 돈이 생기자 달려가 산 책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초판본 값을 치른 후 마차 탈 돈이 없어 세 번이나 끙끙대며 먼 집으로 나른 얘기 등이 미소와 감동을 준다.
이와는 비교도 안되지만, 대학 때 '전후세계문학전집'을 사기 위해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며칠간 헤맨 적이 있다.
2차 대전 후 세계문학사를 요란하게 장식한 작품이 거의 망라된 그 전집을 갖고 싶었다.
"섹스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화(禍) 있을진저!" 등의 도발적인 문장으로 앞 세대에 반항했던 미국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작 '노상(路上)에서'가 그 전집에 있었다.
영국 '앵그리 영멘' 문학도 낯선 풍모와 어법으로 거친 숨을 쉬고 있었고, 프랑스에 새로운 모랄을 요구한 '도둑일기'나 일본 '태양족' 붐을 일으킨 '태양의 계절' 도 그 전집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10권 중 절반 밖에 구하지 못했으나, 그 책들은 당시의 열정을 떠올려주곤 한다.
성탄절과 연말이 다가오자 선물용책과 카드, 연하장을 사려는 사람들로 대형서점이 붐빈다.
신간서점에 인파가 몰리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번듯한 고서점의 부재는 늘 아쉽다. 파리센강 가에는 고서화를 파는 헌책방이 도열해 있고, 영국에는 헤이 온 와이라는 고서점 도시가 유명하다.
우리에게는 일본 도쿄의 진보초(神保町) 고서점가가 많이 알려져 있다.
세계 10대 출판국에 든 탓인지 국내에서도 내용ㆍ장정이 중후한 책이 많이 출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한 책들도 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취를 감추고 만다.
도서관에라도 가려면 우리 공공도서관 규모가 미국의 20분의 1이 안되기도 하지만, 도서 구입비도 빤하여 웬만한 책은 없기 십상이다.
공공도서관이 제 구실을하지 못할 때, 책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곳이 헌책방이다.
찰스 램이 '누더기를 걸친 노병' 이라고 부른 헌책과 고서점은 점잖은 노인의 흰머리, 혹은 이마의 주름살과 같다. 고서점 거리는 시민의 지식 창고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도시마다 주요 문화사업으로 고서점, 또는 고서점가 개발을 권하고 싶다. 그곳에 도쿄 진보초처럼 신간서적과 고서를 함께 취급하는 서점을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서울의 경우 한 때 유명하던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전과 비교가 안될 만큼 규모가 줄었고, 책도 헌 교과서 수준이다.
고서점가와 이웃해 있던 동대문 의류상가 일부가 '두타' '밀리오레' 등 새 건물로 바뀌어 성공했듯이, 고서점도 규모나 운영방식에서 혁신을 이뤄야 한다.
고서점가는 청계천이어도 무방하지만, 문화의 거리 인사동 부근이나 대학이 몰려 있는 신촌 어디쯤이어도 좋을 듯하다.
박래부 심의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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