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 龍山 숲은 예부터 서울의 허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 龍山 숲은 예부터 서울의 허파

입력
2001.12.19 00:00
0 0

스모그가 심하지 않은 날, 남산 서울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거대도시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온다.북으로 북한산과 북악산, 동으로 아차산, 남으로 한강과 관악산, 서로는 벌판과 63빌딩이 둘러쳐져 있다.

유독 남산과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63빌딩 사이에는 빼곡히 들어선 건물군이 두드러진다.

녹색은 이들 건물군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남산 아니면 외곽의 산에만 존재한다. 대부분 지역은 온통 회색 건축물과 건축물을 흐릿하게 가리고 있는 스모그 뿐이다.

그런데 남산 남쪽에서 한강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전혀 딴판이다.

남산과 한강사이에 녹지 반, 건물 반인 지역이 100여만 평이나 펼쳐져 숨통이 트이고,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 지역이 바로 반 백년 동안 유지돼 온 용산미군기지 이다. 남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남산 면적에 버금가는 이 지역이 이 정도의 녹지로 유지된 것은 미군시설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남산 서울타워에서 용산 미군기지를 내려다 볼 때마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의 개발보다는 나비와 잠자리의 보금자리를 위해 개발을 기꺼이 유보하는 시대가 올 때까지, 역설적이지만 미군기지가 현재 상태로 머물렀으면 하고 혼자 생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군 당국이 용산 미군기지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환경생태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생태적인 측면에서 용산 미군기지가 아파트 건설 등으로 더 이상 개발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조선시대 초기 엄격한 풍수지리에 의해 조성된 도시이다.

백두산의 지맥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 오다가 한북정맥으로 방향을 튼 후, 삼각산을 거쳐 북악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뒤, 인왕산과 낙산으로 나뉘어졌다가 한강을 넘어 관악산에 이른 것이다.

풍수지리는 글자 그대로 바람과 물 등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사상이어서, 부평과 김포평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의도 인근에서 방향을 틀어 지금의 원효로―서울역―종로―중랑천으로 빠지니, 우리 선조들은 분지 속에 갇힌 한양도성의 대기오염 물질이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북동쪽으로 실려 가는 바람의 섭리를 이용했던 것이다.

이런 이치를 고려하여 도성 밖으로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숲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함부로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으니 바람길을 보존하는 사상에서 연유한 것이다.

사람은 남산 북쪽 도성 안에 살면서, 다른 생물들은 남산―용산 미군기지―한강에 이르는 지역에 보금자리를 할애했음은 물론이다.

남산의 동물들은 용산 미군기지의 벌판을 거쳐 한강가에 이르렀을 것이다. 더구나 고려시대 이후 묘하게도 외국군대가 주둔했던 용산기지는 토지이용이 조밀하지는 않았을 테니, 동물의 이동통로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은 고립돼 있는 남산 자연생태계가 용산 미군기지와 하나의 권역으로 통합해 한강에 이르게 한다면 우리로서는 뭇 생물들의 안식처를 도시 내에 보장함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귀중한 장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용산기지는 최소한 지금의 상태만으로라도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훗날 미군기지를 다른 장소로 옮긴 후 남산과 더불어 자연생태를 복원할 유보지로 이 지역을 활용하면 가치는 훨씬 높아질 것이므로 온전히 보전돼야 하는 것이다.

문화생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점도 있다. 테러에 대비해 미군기지에 아파트를 지어서 용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 미군가족들을 영내에서 안전하게 살게 해 줄 계획인 것 같다.

이 경우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민과 어울려 살던 미군 가족들과의 교류가 끊어져 하찮은 일에도 양 국민 간에 오해가 생겨 낯붉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경재 서울시립대 교수 환경생태발전연구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