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둑해져야 비로소 눈에 생기가 돌고 온 몸에서 에너지가 용솟음친다. 바로 나이트동호회(회장 라엘) 회원들이다.스스로를 ‘밤에 화끈하게 즐기는 방법을 연구하는 모임’이라고 밝히는 이들은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수시로 번개모임을 갖고 ‘물좋은’ 바(Bar)나 나이트클럽을 탐험한다. 이들의 동선(動線)은 어디로 이어지고 어떻게 노는 걸까.
시티스케이프 홈페이지(www.cityscape.co.kr)에 있는 나이트동호회 게시판에 “13일 밤에 한번 흔들어 보자”는 번개모임 공지가 뜬 것을 보고 따라 나섰다.
▼19:30, “야, 버터.”“왜,홀리?”
귀를 에이는 강추위. 1차 장소인 서울 홍익대앞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여자 회원 3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야 버터, 너 왜 저번벙개(번개모임)때 안 왔냐?”
“그래서 홀리, 불만 있냐?”
이들은 서로를 아이디(ID)로 부른다. 라엘(회장ㆍ문귀영ㆍ24ㆍ컴퓨터 프로그래머), 버터(민선주ㆍ23ㆍ회사원), 홀리(마혜경ㆍ24ㆍ무직)가 그들이다.
“인터넷에서 서로를 아이디로 부르다 보니 실제로 만나도 아이디가 편하거든요. 재미있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한 친근감이 들지요.”(라엘 회장)
스테이크로 배를 채우고 가볍게 기분이 달아오를 정도로 맥주를 비울 무렵 남자 회원 3명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레조. 모사드, 그리고 M. 모두 스스로를 20대 초반의 회사원으로 소개했다. 이들 남녀 6명은 평범한 캐주얼 차림.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
인원이 구성됐고 배를 채웠으니 춤추러 가는 일만 남았다. 어디로 갈까. 강남의 나이트클럽에서 한번 흔들어 봐?
그렇지만 기본 안주만 5만 원이 넘는 나이트클럽에 가기에는 ‘실탄’(돈)이 부족하고 한강을 건너기도 불편하다. “그럼 근처 힙합바 NB로 가지 뭐.”
▼21:30 춤 못 춰야 오히려 스타?
입장료 5,000원을 내고 지하실 입구를 들어서니 힙합이 귀가 찢어질 듯 울리고 바텐더가 현란한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가수 양현석이 운영하는 이 곳을 이들은 2차 장소로 애용한다.
나이트 전문가들에게 음악과 무대가 주어지니 물 만난 고기들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색전등이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무대에 뛰어들었다.
특히 다소곳한 분위기를 풍기던 홀리의 변신이 놀랍다. 긴 머리를 쉴새 없이 앞뒤로 흔들며 갖가지 고난도 동작으로 무대를 휘어잡는다.
“쟤가 나이트클럽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춤꾼이지요. 홀리가 나이트클럽 테이블에 올라가 한번 흔들면 쏟아지는 부킹으로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 정도랍니다. 이런 춤꾼들이 동호회에 꽤 있어요.”(버터)
무대에서 잠시 나온 홀리의 말. “귀찮은 척하지만 실은 스타 대접이 싫지 않아요. 못이기는 척하면서 몇 군데 들어갔다가 즐기고 오지요.”
라엘 회장은 “모두가 춤을 잘 추다 보니 춤을 약간 못추는 사람이 오히려 인기“라면서 “인기를 끌기 위해 일부러 춤을 못 추는 척하는 회원이 있다”고 귀띔했다.
▼23:30 밤이 깊어지니
나이트동호회원들은 NB를‘2차 아지트’로 애용하지만 힙합 음악만 틀어줘 질린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3차인 인근 지하카페 하바나에 도착하니 자정 무렵. 인원을 확인하니 이탈자가 한 명도 없고 뒤늦게 장작, 레이, 이끌이라는 남자 회원 3명이 도착해 9명이 됐다.
20대 초반인 이들은 회사 야간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왔다.
어느 회원이 이곳에 맡겨놓은 데킬라를 돌려 마시고 나니 몸이 훈훈해졌다. 홀리를 포함한 3, 4명이 복도에 나가 다시 한번 몸을 흔들고 나머지가 모여앉아 환담을 나눈다.
이렇게 늦게까지 무리하면 다음날 회사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제대로 근무하기 힘들지요. 모임이 늦어져 곧바로 회사로 출근한 적이 있었지요. 직속 상사가 ‘어디 아파?’라고 묻길래 ‘요새 감기가 독하군요’라고 얼버무렸지요.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으며 회원들 스스로 앞가림을 잘하는 편입니다.”(버터)
▼03:00 “우린 건전한 나이트파”
“저희 동호회는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퇴폐적이지는 않습니다. 퇴근해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밤생활을 재미있고 활기차게 보내자는 모임이지요. 회원들 중에는 모여서 심야 영화를 보러 가거나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레조).
동호회 이름도 ‘Everything you can do in the night’에서 따왔다. 회원들은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서로의 직장과 나이 정도만 알고 지내지만 친해지면 개인적 일들을 상담하는 전면적인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날도 몇몇 남자 회원끼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아이디가 아닌 “형님” “동생”으로 부르는 장면도 보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만나 연인사이가 된 남녀 회원도 있다”면서 “나이트클럽에 다닌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것은 기성세대의 시각이며 회원들은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맡은 일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설립된 이 동호회에는 1,000여 명이 가입했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은 100여 명.
남녀 비율은 50대 50. 1년에 2차례 정기 모임이 있고 수시로 게시판에 번개모임을 띄워 5~10명 단위로 밤을 함께 보낸다.
이들은 다시 4차 노래방으로 이동해 새벽3시까지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작별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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