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1년 12월19일 덴마크 출신의 러시아 탐험가 비투스 요나센 베링이60세로 죽었다.이 탐험가의 이름은 베링해, 베링해협 같은 지명에 남아 있다. 표트르1세를 알게돼 러시아 해군에 근무하던 베링은 차르의 지시로 시베리아와 아메리카가 육지로 연결됐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1725~1730년에 걸쳐 첫번째 캄차카탐험을 했다.
탐험 중이던 1728년 7월13일 베링은 대원 44명과 함께 북위 67도18분, 서경 167도 지점에 이르러 두 대륙 사이에 해협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보다 반세기 남짓 전인 1648년에 러시아의 주뇨네프라는 사람이 이 바다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뒤에 발견됐지만, 황제의지시에 따라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분리돼 있다는 것을 확인한 베링의 공적을 기려 이 바다와 해협에는 베링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베링은 1734~1743년에 두번째로 캄차카 탐험을 했는데, 탐험 중이던1741년에 베링해협 너머의 알래스카를 발견했다.
당연히 알래스카는 러시아 영토가 됐다. 황제는 알렉산드르 바자노프를 그 땅의 지사로 파견해 통치하게했다.
베링이 알래스카에 다다른 이후 쿡, 밴쿠버, 매켄지 등의 영국 탐험가들도 알래스카를 답사한 바 있다.
알래스카는 1867년 재정이 궁핍했던 러시아 황실이 미국에 720만 달러에 팔았다. 러시아가 그 곳에 묻혀있는 무진장의 지하자원과 뒷날의 전략적 가치를 알았더라면, 그런 아둔한 거래는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베링은 두번째 캄차카 탐험 중 괴혈병에 걸려 귀국하던 길에 캄차카반도 부근 코만도르 제도의 아바차섬에서 난파했다.
이때가 1741년 11월초였는데, 베링은 그 섬에서 한 달 이상 버티다가 사망했다. 베링이 죽은 뒤 아바차섬은 베링섬으로 개칭되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