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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선 후보에게 고함

입력
200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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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지리산에 갈 때 구례읍에서 택시를 탔다.택시기사에게 "경치가 아름답다"고 말을 붙였더니, 토박이라는 그 택시기사는 "경치가 좋으면 뭐합니까. 젊은 사람은 떠나고 맨 날 상가 집만 생기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구례군에 알아보았더니 그 택시기사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30여년전 8만명에 이르던 인구가 작년 말 현재 3만3,663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또 작년 사망자가 396명이고 태어난 아기는 351명으로 출생률보다 사망률이 훨씬 높다. 초등학교는 어린이가 모자라 속속 폐교되고 있다. 농촌사회가 쇠락해가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렇게 허약해진 농촌지역이 쌀 시장개방이라는 어마어마한 WTO발 태풍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떨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힘이 쏙 빠져 아무런 비전도 제시할 수 없는 처지고, 정치권은 다음 대통령 자리를 놓고 이미 정신없는 싸움에 들어갔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쌀시장개방이 오래전 예고된 궤도인데 그냥 응급처방으로만 병을 키워왔다는 점이다.

8,9년 전 일이다. 당시 선경그룹 총수였던 최종현 전경련회장이 뉴욕의 아시아협회초청연사로 나와 한국의 경제정책에 대해 연설한 적이 있는데, 딱 한가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국제시세보다 몇 배나 비싼 쌀을 정부가 사주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극히 우려된다"는 말이었다.

나중에 기자들이 사석에서 "그 얘기는 미국에서 할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제기해야 할 것이 아닌가"고 묻자, 그는 "역적이 될 판인데"라며 손을 내저었다.

최회장의 염두에는 농업문제를 걱정한것이 아니라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쌀이 비중이 크지 않는데 그것 때문에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공산품 판로를 죽이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당시 한국경제를 주물렀던 정치인과 공무원들도 쌀시장 개방의 물결을 몰랐을리 없었건만 우리 국민의 '쌀정서' 앞에 그냥 속수무책으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책임맡은 사람들이 미래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야 벼랑 끝에서 준비를 시작해야 할 판이다.

작년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미화로 100억달러쯤 된다고 한다. 올해 폭락할 대로 폭락한 반도체 수출 추정액 145억 달러와 비교된다.

국제시세의 6배나 비싸니 우리 농촌은 WTO체제에서 20억 달러 미만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구례군이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옛날에 통했던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이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한다면 우리 농촌은 이 상황에 직면했다.

쌀시장개방에 따른 농촌문제는 농림부 공무원들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농민단체가 데모를 해서 풀 수 있는 차원도 아니다.

국가경영철학이 요구되는 문제이다. 농촌을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장소에서 전원문화를 중심으로 한 풍요한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킬 비전이 요구되고 있다. 농촌이 풍요롭지 않는 선진국이 없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경제공부를 하며 유권자에게 선보일 경제 정책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하이테크 분야가 붐을 타자 그들은 핀란드나 실리콘밸리로 달려가 카메라앞에 선다. 대통령꿈을 꾸는 사람들에겐 농업문제에 매달리는 모습보다 첨단이미지를 선보이는 것이 유리할 지도 모른다.

첨단분야는 기업 스스로 헤쳐나갈수 있다. 그러나 농촌문제는 다르다. 국가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그 디자인은 지방을 살리는 문제, 수도권 비대화의 방지문제, 지방문화의 육성 문제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것이어야 한다.

국가 지도자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어야 할 문제다. 유권자, 특히 지방 유권자들은 대통령후보에게 그 대답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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