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들에게 2001년은 ‘시련의 계절’이었다. 극심한 경기침체, 특히 정보기술(IT) 산업에 몰아닥친 한파, 미국 테러사태 등 악재들이 연쇄 돌출하면서 수많은 CEO들이쓴 맛을 맛봐야 했다.하지만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해 ‘뜬’ CEO도 있다. 비운과 영광의 희비가 엇갈렸던CEO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벤처스타들의 좌절
1999~2000년이 벤처CEO들에게 천당이었다면 올해는 분명 지옥이었다. IT불황과 코스닥 침체로 벤처CEO들은다른 기업인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빅 뉴스는 오상수(吳尙洙)새롬기술 사장의 사임. 99년 코스닥 열풍속에 기술과 열정만 있으면 갑부가 될 수 있다는 벤처신화를 일궈냈던 그는 미국내 자회사인 다이얼패드 커뮤니케이션이 심각한 경영난에 처하고, 그 여파가 국내 본사로까지 미칠 조짐을 보이자 미국쪽 경영전념을 위해 지난달 전격 퇴임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효시로 꼽히는 이민화(李珉和) 메디슨 사장도 경영일선에서 퇴진했다. 벤처붐 붕괴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고, 주가가 소액주주들에게 제시했던목표선에 미달하게 되자 이 사장은 10월 비상근 이사회의장으로 물러났다.
9월엔 대기업(삼성SDS) 출신에서 벤처기업인으로 변신했던 홍윤선(洪允善) 네띠앙 사장이 퇴임했다. 이어 네띠앙의 대주주인 한글과 컴퓨터의 전하진(田夏鎭) 사장은 손실이 커진 네띠앙 회생을 위해 한컴 사장직을 사퇴했다. 야후코리아 염진섭(廉振燮) 사장도 2월 사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벤처기업을 줄줄이 코스닥에 등록시켜 ‘마법의 손’으로까지불리웠던 서갑수(徐甲洙) 한국기술투자사장은 회사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영어(囹圄)의 몸이 돼 ‘벤처캐피탈의대부’란 이름이 무색하게 됐다. ‘
■경영분쟁
대주주와 갈등으로 옷을 벗은 CEO도 속출했다. 특히 외국인 지배주주와 국내 전문경영진간의 경영노선을 둘러싼분쟁이 잇따르면서, 새로운 기업형태로 확산되고 있는 ‘노란머리오너-검은 머리 사장’체제에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실기업을 단기간내 초우량기업으로 변모시키며 ‘구조조정의 전도사’로까지 불리웠던 서두칠(徐斗七) 한국전기초자 사장은 국내공장을 일본의 생산기지로 운영하려는 일본 대주주인 아사히글라스와 맞서다 7월 옷을벗고 말았다.
금강기획을 업계랭킹 3위로 끌어올렸던 채수삼(蔡洙三) 사장도 대주주인 CCG와 송사(訟事)끝에 최근 경질됐다. 외국인 CEO이긴하나, 호리에 제일은행장도 결국은 지배주주(뉴브지지 캐피탈)와 경영노선차이로물러난 경우다.
김충식(金忠植)현대상선 사장은 현대그룹의 부실계열사 지원요구를 거부하며 ‘독립경영’의 깃발을 들었다가 “한국적풍토에서 전문경영인이 뜻을 펴기란 너무도 어렵다”는말을 남긴 채 퇴진했다.
■스타탄생
악조건속에서도 영광의 얼굴은있다. 벤처쪽에선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安哲秀) 사장과 NC소프트의 김택진(金澤辰) 사장이 확실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CEO의 새로운 벤치마킹모델을 창조한 안 사장은 아시아ㆍ유럽재단으로부터 ‘차세대지도자상’까지 받는 영광을 누렸다.
리니지 게임 돌풍으로 동시접속자 14만명의 경이적 기록을 세운 김 사장 역시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로부터 ‘변화를 주도한 인물’로 선정되며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긴장시키고 있다”는 격찬까지 들었다.
대기업쪽에선 모태사업(주류)까지처분하고 한국중공업을 인수, 7년여에 걸친 그룹 사업구조조정을 마무리지은 ㈜두산 박용만(朴容晩) 사장이 단연 돋보인다. 오너일가 출신이지만, 그는“CEO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한다.
금융계에선 98년 주택은행장취임 때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올해 국민+주택의 합병까지 성사시켜 마침내 리딩뱅크의 CEO가 된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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