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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 한익환씨 백자 '달항아리'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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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 한익환씨 백자 '달항아리' 작업실

입력
200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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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백색과 싸운 셈이지요. 차돌이 완전히 녹았을 때를 100% 백색이라고 하면, 조선백자는 93%, 내가 만든 백자는 91~92%가 될 거요. 이에 비하면 일본 것은 만들다 만 것 같아. 1% 더 높이려고 50여 년을 싸웠는데 그게 잘 안돼.”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1동 도예가 한익환(81)씨의 집.

지은 지 17, 18년쯤 되는 2층짜리 벽돌 건물로 1층 현관문을 열자 모든 것이 하얗다. 40평 남짓한 작업실을 가득 메운 백자 때문이다.

“지하실 것까지 합치면 6,000~7,000점쯤 될까. 용인(그가 1970년 세운 300평짜리 가마)에는 더 많아요. 한 20만 점 될 거요. 다 내 자식들이지.”

22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16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그는 백자 달항아리 제작의 독보적 존재다.

79년 국립중앙박물관 첫 초대전의 주인공도 그였고, 83년 일본에서 ‘한국미술 5,000년전’이 열렸을 때 우리 정부가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에게 선물한 것도 그의 백자달항아리였다.

50년 중앙공업시험연구소 요업과에 근무했을 때부터 그의 삶은 둥근 백자를 닮아 있었다.

한남동 작업실은 서울에 머물때 간간이 물레를 돌리며 작품 구상을 하는 곳. 본격적인 제작은 석유가마가 갖춰진 용인 가마에서 한다.

“백자라는 게 참 오묘해요. 석회분을 조금 더 넣으면 (굽는 과정에서) 그냥 주저앉고, 조금 덜 넣으면 조선백자의 부드러운 맛이 안 나고…. 전에 6각병 100개를 가마에서 구웠는데 석회 함량 탓인지 모두 주저앉고 말았지. 이 곳으로 모두 가져와 며칠을 바라보며 무척 속상해 했어요.”

요즘 걱정은 체력이 달린다는 것이다. “유약에 담근 도자를 건져낼 때 손가락을 하나만 써야 하는데 요즘은 힘이 모자라 네 손가락을 써. 그래서 손자국이 나는 바람에 실패한 것도 많아요.”

더욱이 10여 년 전 앓은 중풍과 백내장, 녹내장으로 오른쪽 눈은 실명했다.

“한 10년 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조선백자의 빛깔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익환씨는 “조선백자는 밭일 하는 촌 여자의 살짝 드러난 뽀얀 팔 색깔과 같다”라고 말했다.

/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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