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15일 오후 3시께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은 다양한 생김새의 외국인노동자들로 북적거렸다. 두툼한 방한복 속에 숨어 있는 얼굴을 보면 방글라데시나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에서 온 사람들임을 바로 알 수 있다.일행으로 보이는 4명이 지하도를 지나 길건너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들이 다다른 곳은 경기 안산시 원곡본동.
겉으론 전혀 이국적인 느낌을 안겨주지 못하지만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재중동포를 비롯해 방글라데시 필리핀 스리랑카 우즈베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이방인이 인근 공장지대를 무대로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곡본동 일대는 ‘국경없는 거리’로 불린다.
이 곳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성촌으로 변한 것은 IMF 한파가 불어 닥친1997년 말부터다.
인근 반월ㆍ시화공단에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갑자기 회사 기숙사 등에서 쫓겨나자 교통여건이 좋은 데다 임대료가 저렴한이 곳으로 몰려왔다.
일자리를 잃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조차 없는 처지이니 안산역 뒷편에 매일 새벽 열리는 인력시장에 기웃거리려면 이만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원래 이 마을의 터줏대감이던 한국인 노동자들은 실직과 함께 다른 일자리를 찾기위해 떠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현재 이 일대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공식 집계로 2,000여명. 그러나 불법체류자들을 포함하면 7,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70%가 재중동포로 파악되고 있다.
동사무소 관계자는 “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원곡본동 주민이 3만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1만9,000명 남짓”이라며 “나머지는 외국인 노동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일 낮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기기 쉽지 않다. 대부분 공단에서 일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 곳곳에 자리잡은 중국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각국 식료품점에서 존재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물론 보통사람이 읽을 수없는 언어로 쓰여진 간판들 속에는 그들의 전통 음식점도 들어 있다. 방글라데시식 양고기 카레, 생원두와 우유를 섞어 끓이는 인도네시아식 커피, 스리랑카식 튀김요리 등은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이다.
원곡본동에서 4년간 식료품점을 운영해온 방글라데시인 산투(35)씨는 “주말에 찾아오는 단골만 100명이 넘는다”며 “값은 본국보다 20~30% 비싸지만 고향의 맛을 찾으려는 동포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외국인들이 쉽게 국제전화를 걸 수 있도록 국제전화 전용방이 밀집해 있는 것도 이곳만의 진풍경. 또 대다수 노래방에는 중국어 노래가 입력돼 있으며 필리핀과 스리랑카산 비디오 대여점도 있다. 하룻밤 5,000원에 잠을 잘 수있는 고시원도 60여개나 된다.
2~3평 원룸이 전세 300만원에 월세 18만~20만원에 거래되면서 70만~80만원의 월급을 받는 이들에게 부담이 되자 나타난 현상이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朴天應ㆍ41ㆍ목사) 소장은 “추석과 설 등 명절에는 세계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축제가 열리고 한달에 한번씩 50~60명의 내ㆍ외국인이 어울려 마을앞 대청소를 하는 등 나름대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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