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연일 지면과 화면을 장식하는 것이 '아무개 게이트 라는 말들이다.어느 새 우리사회에서 무슨 무슨 '게이트'란 말이 시민적 공감 아래 사회적 용어로 번듯하게 정착된 느낌이다.
도대체 남의 나라 말인 게이트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뿌리를 내린 까닭이 무엇일까.
부패와 비리 사건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비리 사건들의 흑막이 남김없이 밝혀진 적도 없고 보면 이 나라에서 터진 독직사건과 권력형비리 치고 의혹사건 아닌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굳이 국민의 정부에서 터진 부패사건마다 게이트라는 말이 따라붙는 것인가. 이 사건들이 과거의 사건들과 뭔가 다르다는 뜻인가. 아니면 정치적 반대자들의 의도적인 의혹 부풀리기에 언론들이 생각 없이 동조한 결과인가.
최근 자주 쓰이는 게이트란 말에는 몇 가지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 같다.
먼저 돈과 권력이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정경유착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외부와는 차단된 채 인맥과 지연으로 얽힌 '그들만의 비밀스런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한다.
여기까지는 이전의 의혹사건이란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 빈발하는 게이트 현상에서 이전과 구별되는 특별한 점은 사건과 의혹의 진상을 밝혀야 할 주체마저 그 사건의 일부로 휩쓸려 들어가있다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진상규명이나 처벌에 대한 기대를 접고, 집행권력과 사정권력 그 모두에게 동시에 냉소와 야유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과거의 그 사건들과는 구별되는 용어를 선호하게 된 것이 아닐까.
사실 게이트란 말은 사전적으로는 그저 문(門)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모든 문은 우선 공간을 안과 밖으로 구분하는 차별과 경계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일단 내외를 차단하는 문이 만들어지면 그 문의 내부는 외부에 대해서 '비밀의 공간'이 되고, 그 비밀스러움과 폐쇄성은 그 문을 '권력의 공간'으로 만든다.
모든 권력과 정보가 문 안쪽에서 끼리끼리 공유되고, 모든 의사결정이 문 안쪽에서 비밀스럽게 사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문 안쪽에 자리잡은 자들에게 정보와 권력과 부가집중되고, 그런 자원이 문 안으로 집중될수록 그 안에 진입하여 합류하려는 경쟁은 치열해진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문지방을 넘기 위한 진입비용은 높아지고, 진입비용이 클수록 진입 이후의 특혜 또한 커진다.
문 안의 공간이 내밀한 공간일수록 통과 가능한 사람들의 자격범위는 좁아진다. 고도의 신뢰수준이 확보되지 않으면 비밀의 유지가 어렵기때문에 혈연과 학연, 지연의 일차원 기준이 통과기준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흔히 로비스트란 이름의 수문장이 끼어 든다. 바로 여기에서 '끼리끼리 어깨동무'의 음습한 부패집단이 형성될 여지가 자라난다.
이처럼 권력의 문은 그 문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지 않고 비밀스럽게 닫혀 있는 한 늘 부패의 문이 되기 마련이다.
밖에서 안을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모든 문이 투명하다면 비밀의 문이 생길 리 없고, 비밀과 '끼리끼리만' 통과하는 문이 없다면 어찌 '끼리끼리 해먹는' '그들만의 부패의 공간'이 가능하겠는가.
모든 의사결정의 절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대 혁신이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수긍하고 승인할 수 있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가 자리잡는다면 더 이상 이 나라에 닫혀 있는 '부패의 문'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모든 문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문안과 바깥의 경계는 투명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문부터 열려 있어야 한다. 대통령부터 모든 것을 활짝 열고 개방해야 한다.
박승희 성균관대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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