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여름 백두산에서 본 야생화는 지금도 인상에 깊이 남아있다.태풍의 끝자락이 백두산을 지나갈 때 천문봉에 올랐으나 거친 모래바람에 밀려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내려가기가 아쉬워서 장백폭포를 보기 위해 잠깐 차를 세운 순간 비탈길에 바짝 달라붙은 한 무리의 작은 꽃들이 경이롭게 보였다.
그런데 왜 문득 달력 사진이 생각났을까?
■달력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그림과 사진예술을 가르치던 교과서였다.
한국화의 대가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 운보 김기창의 그림이 지나갔고,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의 서양화도 낯설지 않다.
늘씬한 자태의 여배우가 한 달 내내 안방을 내려다본 해가 있었고, 외국의 명승지가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근래엔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새삼 달력에서 확인하고 즐거워했다.
■조선의 임금님은 새해가 오면 책력을 만들어 전국의 양반들에게 하사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지금도 달력은 사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서 나눠주는 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미국에선 달력이 해마다 수요가 줄지않는 대단한 계절상품이다.
책방 한쪽을 차지한 진열대에서 갖가지 지식이 가득한 달력을 골라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닌 듯하다.
그림과 조각을 비롯한 미술작품이나 천문 기상의 기록이 담긴 과학업적 그리고 고대와 현대의 역사현장이 생생하고, 대중예술의 스타들이 현란한 모습으로 나오기도 한다.
■요즘 기업들의 달력 인심이 사나워졌다.
은행에 가면 홍보지처럼 주던 것을 우수고객에게만 몰래 전하고, 대기업이 대량으로 여기저기 돌리던 모습도 끊긴 듯 하다.
인쇄비 탓인지 한 벽을 차지하던 크기도 줄고, 아예 책상 위에 놓는 작은 달력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젠 우리도 달력을 상품으로 사야 하는 때가 온 것 같다. 그러면 수요자를 끌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든 달력이 새로운 문화로 등장할 것이다.
/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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