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선수들 사이에서 히딩크 감독은‘할아버지’로 통한다. 인상도 그렇거니와 무릎이 불편해 다리까지 저는 모습이 꼭 동네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콧수염이 없어 한결 부드럽다고는 하지만 처음 히딩크 감독을 봤을 땐 솔직히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대표팀 선배들도 98년 프랑스월드컵서 ‘악몽(네덜란드전 0_5 패)’을 안겨준 장본인을 감독으로 모시게 된 것에 주눅 든 표정이었다.
그러나 고지식해 보이는 겉모습과는달리 그는 항상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감독이다. 지난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서 프랑스에 0_5로 지고 난 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실력으로 어떻게 내년 월드컵에 출전하겠느냐’는 생각에 감독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뜻밖에도 “나는 괜찮은 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느냐”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고 “지금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경기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조금도 스트레스를 주지 않지만 그는 훈련때면 항상 선수들을 긴장케 한다. 훈련 도중 튀어나오는 갖가지 농담과 쇼맨십에 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만 훈련태도가 불성실하면 무섭게 화를 낸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훈련은 뜻밖에도 패스 연습. “유럽 최정상의 선수들도 매일 30분씩은 패스 연습을 한다”며 항상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말이 안 통해 훈련때나 경기때나 어려움이 있지만 이젠 눈빛과 몸짓으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한때 대표선수들 사이에서 일과후 영어공부를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나도 동참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영어공부보다는 월드컵 8강 진출이 더 빨리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년동안 함께 생활해 보니 그는 우리개개인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 덕에 나도 경기에 대한 자신이 부쩍 늘었다.
그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냉철한 감독이기도 하다. 언뜻 ‘불성실해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지만 대표선수들은 한결같이 그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두른다. 개개인의 세세한장단점을 모두 파악해 맞춤식 체력훈련을 지시하고, 내년 5월까지의 훈련 일정도 모두 준비했다고 한다. 나도 서귀포 훈련때 개인 체력훈련을 게을리했다고 꾸중을 들었던 터라 휴식기에 체력훈련을 보완했다.
히딩크 감독은 오로지 월드컵 본선만을 생각하고 있다. 내 목표도 그와 다를게없다. 1년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확실하게 얘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년 6월에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생겼다.
이준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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