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예감하듯 하늘도 찌푸려“넘어져도 돼요. 활짝 벌려. 쭉 가다가 튼다.”
양쪽으로 가로수가 늘어진 길을 자전거로 타고 내려오던 교복차림의 배용준과 최지우.
PD의 지시에 따라 뒷자리의 최지우는 장난스럽게 양팔을 벌렸고, 곧 이어 자전거는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그리고 “컷”소리가 들렸다. 윤석호 PD다.
12일 오후 경기 가평군 남이섬의 산책로. 9월 KBS를 떠난 윤 PD가 프리랜서로 첫 연출을 맡은 ‘겨울연가’의 첫 촬영이 이뤄졌다.
2002년 1월 방영될 KBS2 월화미니시리즈 ‘겨울연가’는 지난해 숱한 여성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했던 ‘가을동화’처럼 또다시 운명적인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금방 진눈깨비라도 흩뿌릴 것 같은 날씨 때문에 첫 촬영현장에는 겨울 특유의 메마르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날 촬영은 정유진(최지우)과 그의 첫 사랑 강준상(배용준)의 고교시절 첫 데이트 장면.
“그냥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게 화면에 훨씬 동적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윤 PD는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인지 느긋한 모습이었다.
‘겨울연가’는 첫사랑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가 10년 후 첫사랑을 닮은 남자가 나타나면서 그 흔적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
배용준은 교통사고로 사라지는 준상과 10년 후 나타나는 준상을 닮은 이민형의 1인 2역.
‘첫사랑’(KBS)이후 4년 만에 만난 배용준과 최지우 모두 ‘겨울연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청순가련형의 대명사이면서도 윤 PD의 작품에 처음 출연하는 최지우는 “자기주장이 확실한 인물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맡은 배역 중 나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배용준도 “‘사랑의 인사’로 데뷔했을 때보다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윤석호)PD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겨울연가’에는 윤 PD의 연출작에서 심심찮게 등장했던 이복형제라는 인물 설정이 반복되고, 여기에 기억상실이 더해지며 스토리 전개도 유동적이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과정에서 첫사랑의 순수함을 그리고 싶다. 여운이 남았으면 한다”는 윤석호 PD.
드라마는 그의 독특한 영상감각으로 아픔을 간직한 채 끝날 것 같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인터뷰 - 프리선언 3개월 윤석호 PD
"아름답고 슬픈 사랑 좋아해…"
“큰 조직에서보다 훨씬 자유롭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려고 해요.”
17년간 몸담았던 KBS를 떠난 지석 달이 흘렀다. 윤석호(45)PD는 KBS라는 안정된 조직을 박차고 나와 드라마제작의 경험이 전혀 없는 팬엔터테인먼트와 20부작 미니시리즈 2편을 만들기로 계약 했다.
모험을 시도한 그에게 큰 변화를 기대해 볼만하지만 변함이 없다.
계절 연작을 하듯 ‘가을동화’에 이어 ‘겨울연가’. 제목도 직접 지었다.
“‘가을동화’를 시작할 때도 마음을 비우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내용과 영상을 담은 드라마를 하겠다.”
‘가을동화’의 작가 오수연씨가 스토리구성까지만 참여하고 대본작업은 함께 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랑의 낭만과 서정적 영상을 강조하는 윤PD의 드라마에서는 현실이 별로 묻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개의치 않겠다는 투다.
“사랑의 순수성, 운명성, 영원성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눈을 쫓아다닐 거예요.” ‘겨울연가’의 촬영지는 주로 강원도 일대. ‘가을동화’의 촬영지였던 속초 아바이마을이나 양양 상운초등학교를 한류열풍을 타고 대만에서도 찾아왔던 것에 고무돼있다. 그는 “드라마로 할 수 있는 일을 새롭게 찾아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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