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송태욱옮김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ㆍ60)은 세계문학계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이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마르크스와 그 가능성의 중심’ 등의 저서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는 세계성을 주창하는 현대 철학의 기수로도 꼽힌다.
‘윤리21’은 2000년에 발간된 그의 신작이다.
그가 책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은 “21세기는 윤리의 세기가 되어야 하다”는 의미에서인듯하다. 그런데 21세기의 초입에 어떤일이 일어났나. 바로 미국 뉴욕의 테러와 그에 이은 보복전쟁이라는 비윤리적 사건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20세기의 산물이면서 21세기의 성격을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가라타니의 문제의식과 상통한다.
가라타니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문제가 바로 전쟁 책임이다.
“수년전부터 나는 전쟁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본질적인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책임이란 무엇인가,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운을 뗀 그는 주로 칸트의 ‘비판’철학을 근거로 자신의 윤리에 대한 사고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우선 도덕과 윤리를 구별한다. 가라타니는 사회나 공동체의 도덕은 ‘도덕’이고, 세계시민으로서의 도덕은 ‘윤리’라고 부른다.
즉 공동체 내에서는 도덕적이지만 세계시민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윤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있다.
따라서 윤리의 문제는 자신이 속하 공동체 내의 사고에 대해 의심해보는 데서 시작한다. 가라타니의 이런 분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어떠할까.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나 미국 모두 그들 사회나 공동체 내부에서는 도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가라타니는 이 책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나기 전에 썼다. 그가 다루고 있는 사실은 그 이전의, 역사상의 식민주의와 전쟁이다.
그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식민지주의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20세기 전쟁에 대한 책임 추궁을 당한 나라는 일본과 독일 뿐이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땅에서 인디언을 몰아내고 나라를 건설한 미국,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동남아에서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 제국의 책임은 추궁받지 못하는가.
가라타니의 이런 문제 제기는 한 일본인의 항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가 말한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에서 볼 때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적인 의식, 특정 사회나 공동체 내부의 시선에만 갇혀있을 때 윤리는 없다는 것이 그가 주창하는 21세기의 윤리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