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탈퇴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면서 2차 대전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되어온 세계 핵 질서가 크게 바뀔 전망이다.조지W 부시 미 대통령은 ABM 협정을 탈퇴키로 결정한 사실을 12일 의회 지도자들에게 통보한데 이어 곧 이를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미 의회 지도자들이 밝혔다.
▽새로운 핵질서 출현 예고
냉전시절 미국과 러시아, 양대 강국에 의한 핵 군비 관리체제가 붕괴되고,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우위를 반영하는 새로운 핵 질서의 출현이 눈앞에 다가왔다.
미러 양국이 지난 달 정상회담에서 핵 탄두를 각각 1,500~1,700기, 1,500기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데 이어 미국의 ABM 탈퇴 결정으로 핵 질서의 변화는 대세가 됐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에 탈퇴 의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는 12일 부시 대통령이 지난 주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러시아 방문에서 ABM 협정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탈퇴를 결정했다면서 7일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탈퇴 결심을 내비친 것 같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ABM 협정을 세계 전략적 안정의 초석으로 간주해왔지만 미국의 탈퇴를 되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ABM을 대체할 후속협정 체결이 향후 관심의 초점이다. 부시 대통령도 대체 협정에 대한 논의가 촉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내년 중반 부시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에서 이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ABM 협정탈퇴를 통고하면 6개월 후인 내년 중반께부터 미사일방어(MD)체제를 위한 실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된다.
미 국방부는 내년 초 해상발사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실시하고, 4, 5월께 알래스카의 포트 그릴리에 MD 지휘소와 미사일 격납고를 착공할 계획이다.
▽러시아 묵인설과 국내외 반발
모스크바 타임스는 11일 미러 양측이 새로운 전략무기 통제 협정에 관해 의견을 좁혀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부 장관은10일 “미국이 탈퇴 6개월에 사전 통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향후 협상은 비확산 뿐만 아니라 무기 감축을 강화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원칙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되 미러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군부 등의 충격을 완화시켜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 안팎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미 민주당 소속의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은 11일 성명을 통해 “30년 동안 유지된 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하원(두마)의 드미트리 로고진 국제문제위원장은 “ABM 협정 탈퇴에 맞서 러시아는 제1,2단계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을 모두 탈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장치웨(章啓月) 대변인은13일 "우리는 ABM 협정 탈퇴와 MD추진에 우려를 표명했다"면서 “미국과 ‘전략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ABM협정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한 협정으로 상대방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응하는 ABM 발사기지를 두 곳으로 제한하고 있다.
두 기지의 요격미사일과 발사대도각각 100기로 제한하고 있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정부, 美 ABM탈퇴 대책
정부는 미 행정부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 탈퇴 방침이 한반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고 관측하면서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대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이런 평가는 미국이 북한의미사일개발을 근거로 동북아에서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추진해 왔던 정황에 터잡고 있다.
향후 본격적인 MD 추진 과정에서 북미간 긴장이 촉발되거나 심화할 개연성이 있고,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과 손잡고 반(反)MD 공동전선을 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문제를 대 테러 전쟁의 연장선에 있는 군사전략 차원으로만 접근할 경우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본다.
서동만(徐東晩) 상지대 교수는 “클린턴행정부 시절에는 대량살상무기 억제라는 세계전략과 동북아 안정이라는 지역전략이 병존했는데, 지금은 군사전략만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의 안정적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는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국자들은 북미협상과 MD 체제 추진이 병립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강조한다.
올 6월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한 미국이 전제조건없는 대화 방침을 천명하고, 현재까지 이러한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호 중인 일본 적군파 4명을 추방하는 등 반 테러 입장을 분명히 할 경우, 북미대화가 뚫릴 여지도 크다.
아울러 당국자들은 MD 문제에 보다 유연해진 러시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의 입장으로 인해 북방 3국(북ㆍ러ㆍ중)이 강력한 공동전선을 펼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한 당국자는 “현재 우리의 대응 방향은 미국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는 설득전략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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