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의 문화사'/설혜심지음 /한길사 발행영국 온천장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온천의 문화사’를 쓴 사학자 설혜심은 후기에서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영국 온천 문화의 발달사를 통해 레저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거대한 조망에 익숙한 사학이 온천이라는 사소해 보이는 주제를 조망한데다 한국인의 저술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저자는 역사학의 초점은 인간이며 이런 작은 주제도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긴요한 창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서양 것의 수입이 아닌 우리 시각의 서양사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작업의 의의를 찾는다.
영국에서 온천이 레저의 장으로 등장한 게 언제일까. 기존 통설은 18세기 이후, 산업화에 따른 중간계층의 성장과 더불어 나타났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좀 더 멀리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래 전 중세에 널리 퍼져있던 순례의 관습에서 뿌리를 찾는다.
순례자들이 찾던 성스런 샘물이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후 신비의 껍질을 벗고 세속적 의미의 온천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온천에 몰려든 사람과 그들 덕에 먹고 산 사람들, 온천에서 벌어진 온갖 사건을 통해 당시 풍속과 생활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중에도 온천을 둘러싼 치열한 상업적 경쟁과 그로 인한 부자와 가난뱅이의 양극화 현상을 자본주의 발달 과정과 맞물려 설명한 대목을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온천장이 발달했던 지역의 시정문서, 수도원 기록, 토지대장, 병원 기록, 일기를 비롯해 시집, 여행기, 의학논집, 지역 선전 팸플릿까지 꼼꼼히 챙겨 이 책을 썼다.
이 독창적인 연구는 영국 외 다른 나라의 온천 문화연구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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