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과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이 한 불운했던 여인의 죽음에서 비롯된 일들로 구속됐다.국가 공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그 직함들은 물론 최근까지의 것일 뿐 현직은 아니다. 여인의 죽음 역시 14년 전의 것이다.
한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누리던 당시의 국가안전기획부장도, 차장도 줄줄이 검찰에 불려나오는 중이다.
흔히 의문사 1호로 불리는 최종길 교수의 죽음이 발표된 대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이었다는 내부 증언이 공개되고, 가해자도 당시 중앙정보부의 수사관들이었을 것으로 지목됐다.
보도들은 살해 진상과 조직적 은폐 의혹을 밝히기 위해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차장의 소환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이후락, 김치열이 그 이름들인데, 건강때문에 출두는 불가능하다는 가족들의 말도 전하고 있다.
거의 29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는 지금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매달려 있다.
두 죽음과 관련한 이들 작지 않은 뉴스는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에 전해진 것이다. 인권의 날을 장식한 풍경으로서 매우 상징적이다.
중앙정보부, 혹은 국가안전기획부, 요즘은 국가정보원인 이 '음습'한 국가기관과 유관한 일들이 그 한 꼬투리라도 '양지'로 끌려나와 마침내 진실을 드러내게 되리라고 그 누가 믿을 수가 있었다는 것일까!
그러지 않아도 근래 우리의 국정원은 만신창이다. 14년 전, 29년 전에 지나간 일의 업보만이 아니다.
무슨 무슨 '게이트' 마다 현직 고위간부들의 개입설이 튀어나왔고, 아직도 얼마든지 들먹거릴 개연성이 있다.
경제단장이며 경제과정이며 하는 '경제'간부들이 잇달아 구속되고, 그들을 지휘하는 고위간부의 이름이 자주 '몸통'에 비견되는 것으로 미뤄서는 일련의 스캔들이 단발적이거나 개인 차원의 비리가 아니라보다 구조적인 데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몇몇 '게이트'의 주인공들이 벤처 기업인의 이름을 얻었던 젊은 세대라는 공통점도 그냥 지나치기는어렵다.
구속된 경제과장이 총선출마자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또 무슨 뜻인가.
야당이 제기한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이 희한한 처리과정을 거쳐 '무산'되자 항간에는 "무산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들 모두'가 탄핵된 것"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자민련, 사회봉을 잡은 국회의장등 모든 정치권과 '살았다'고 한숨쉬는 검찰이 싸잡아 '탄핵 감' 이며, 국민정서는 이미 탄핵이 되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정서로는, 국정원을 진짜 탄핵 대상에 추가해야 옳다.
지나간시대 모든 정부기관에 '출입'하던 기관원을 기억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통상적인 정보업무를 훨씬 뛰어넘는 '국정운영 전반'이었고, 이런 성향이 스스로 권력화하면서 '정치개입'을 낳는 등 부패의 토양이 되었다.
중정이 무소불위로 손닿지 않는 곳이 없게 된 데에는 중정을 창설한 당시의 정치권력이 그같은 역할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기서 필연적으로 초래된 것이 최종길 교수의 살해이고, 정준하 선생의 살해이며, 하다못해 수지 김 살해사건의 은폐에 이르기까지의 '만악(萬惡)'이다.
이제 이대로는 국정원의 얼굴을 바로 들 수 없다. '과거'를 털어내고 새로 태어나는 분골(粉骨) 의식(儀式)없이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극대화한 국민불신 앞에서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진실은 밝히는 일에는 공소시효가 문제될 수 없다. 우리가 부끄러웠던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서 용기있는 '증언'이 얼마나 요긴한 것인지도 이번 일로 확인됐다.
한 기관의 개혁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진정한 끌어안음을 위해서, 국정원이 앞장서는 '진실과 화해'의 성사를 이제부터 보고 싶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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