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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집권자의 책임

입력
2001.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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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책임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아무리 숭고한 이념이 있더라도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잃게 만든다면 집권자의 자격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들, 곳곳에 널려있는주검들, 파키스탄 천막촌에 수용된 피난민, 젖먹이를 안고 두려움에 떠는 부인들, 어린이들의 굶주린 얼굴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모습들이다. 지금 이 시간도 험준한 산 속에서 온몸이 언 채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이 전쟁의 원인을 논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전쟁의 결정은 집권자들이 내린 것은 틀림이 없다.

아프가니스탄쪽에서 전쟁을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린 책임자는 탈레반 지도자인 모하메드 오마르였다.

현실적인 군사력의 강약을 뻔히 알면서 무모한 결단을 내린 까닭에 수많은 희생을 낳고 지금은 자신조차 생명 부지가 어려워 쫓기고 있다.

절대권력을 행사한 집권자가 숭고하게 생각한 이념을 앞세우고 국민을 뒤로한 결정이 이끌어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는 혼란기에 체첸에서 지도자 두다예프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 연방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러시아가 위기에 빠졌던 1917년과 1944년에 이어 다시 독립을 시도한 이 결정은 러시아군의 반격을 초래해서 커다란 희생을 가져왔다.

시간을 더 가지고 기회를 봐서 조심스럽게 추진해야할 과제를 결과에 대한 생각없이 결정을 내려서 소수민족 체첸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게 되었다.

카프카스산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던 사람들이 이번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외국인 전사로서 죽음을 맞고 있다.

찾아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아픈 경험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병자호란이다. 광해군은 만주에 대두한 신흥강국 청의 압력에 잘 대처해서 외교전문가로서의 수완을 보였으나 인조반정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다음에 대두한 척화파(斥和派)는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명분을 중요시했다.

청 태종이 대군을 몰고 남한산성 앞까지 왔을 때에도 명분을 따지기에 급급했으나 결국 인조가 삼전도에 나아가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지금까지 삼전도의 굴복이라고 해서 국왕의 항복만 애석해하지만 병자호란에 백성들이 처했던 비참한 상황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란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층은 백성들이었다. 몽골군의 침입이나 임진왜란처럼 집권자의 책임을 따져야 하는 전란은 많다.

하지만 역사 속에 묻어만 두고 현실의 교훈으로 삼는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은 집권자가 되는 방식이 과거와 다르다.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집권자가 된다.

이런 제도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고 평가된다.

앞에 예를 든 사건들에서 집권자가 된 사람들은 무장투쟁의 승리자와 세습왕조의 신하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세운 이념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었다.

요즘 한국정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국민이 선출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가 싶다.

투표를 통해 선출한 정치인들이 국가와 자치단체들을 이끌고 있지만 표를 얻을 때처럼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보수도 개혁도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서운하다. 유권자인 국민을 생각했다면 그처럼 대통령과 야당총재 간 갈등이 오래가지 않았을 것이다.

여야 정당들도 그같이 험악한 꼴들을 국민 앞에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 국정에는 남북문제, 지역갈등, 실직사태, 교육혼란 등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다. 모두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올해가 다 지나간 지금 집권자의 책임이란 무엇인가, 더욱 절실히 생각된다.

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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