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권의 날인 10일 '수지 김 간첩조작사건' 은폐 혐의를 받은 국정원과 경찰 책임자가 구속여부심사를 위한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시사적이다.잘 나가던 전직 경찰 총수 등 관련 공직자의 구속 또는 처벌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권위주의시절 공권력의 이름으로 인권 유린을 자행한 악습과 타성이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정부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공권력 전체의 인권 의식을 발본 개혁해야 할 과제를 새삼 일깨운다.
남편 손에 애꿎게 숨진 여인을 엉뚱하게 간첩으로 몰아 매도한 당초 조작 사건은 14년 전 권위주의 통치아래 자행된 어두운 과거의 유산이다.
그러나 가공할 공권력 범죄의 진상을 뒤늦게나마 밝히는 재수사를 국가기관 고위 책임자들이 담합해 중단시킨 은폐 행위는 현 정부에서 이뤄졌다. 여기에 사건의 심각성이 있다.
수지 김 간첩조작 사건은 1987년 당시 관련 국가기관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남편이 저지른 단순 살인사건을 안기부가 거꾸로 타살된 부인이 남편을 북한으로 유인, 납치하려 한 사건으로 조작한데 반발한 외교 공관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진상은 안기부는 물론이고 다른 국가기관에도 은밀하게나마 알려졌을 것이다.
이런 숨겨진 진실이 유가족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의 억압과 외면에 묻힌 것은 국가나 정권 이익을 앞세워 인권을 짓밟은 부끄러운 과거 탓이다.
그러나 이런 악습 청산을 외친 정부아래서 뒤늦은 진상 규명을 다시 공권력이 억누른 것은 진정한 과거 청산 의지가 없었던 때문이다.
수사 중단 압력을 가한 국정원이나 호응한 경찰을 가림 없이, 인권 존중보다 공권력의 권위와 조직 이익을 지키려는 완고한 의식에 갇혀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끝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찰 총수 등 관련자의 범법 여부를 가리는데 있지 않다. 사법적 처벌 가능성을 떠나, 사건 조작과 은폐 과정에서 인권과 법치를 짓밟는 범죄행위를 인지하고도 침묵하거나 동조한 공직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런 부도덕한 공범 관계를 당연시하는 풍토를 바꾸지 않고는 공권력의 범죄적 인권 유린은 척결되지 않을 것이다.
검찰이 전례없이 공안사건 조작ㆍ은폐를 파헤친 것은 잡다한 정치적 의도와 관계없이 과거 청산에 밑거름이 될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로지 인권과 법치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로 끝까지 진실을 추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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