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 상점, 영업소, 기관 등에서 상호나 판매상품 따위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걸거나 붙이는 표지 2. 대표로 내세울 만한 사람이나 물건.■새 정의: 얼굴, 학벌 등 남 앞에 겉으로만 보여지는 것.
■용례: “누가 뭐래도 간판이 중요해.”
한 사회의 유행어는 꼭 새로 만들어진 말만은 아니다.
‘어느 한 시기에 많은 사람 사이에서 쓰이는 말’이라는 정의처럼 기존에 알려져 있던 단어가 특정 사회현상과 맞물리면서 또 다른 뜻의 유행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간판이다.
‘상점이나 회사 등에서 상호나 상품 따위를 써서 눈에 잘 띄도록 붙인 것’을 일컫는 간판 본래의의미가 점차 변화하고 있다.
한국적인 며느리상으로 사랑받던 ‘간판’ 스타는 마약 복용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고, 한국의 ‘간판’ 산업인 반도체의 불황으로 온 나라 경제가 흔들렸다.
이때의 간판은 ‘대표로 내세울 만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하지만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간판은 또 다른 의미다. 수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모(18)양은“시험을 망치고 나서 속이 많이 상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의 간판이 결정된다는 점에 불만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간판은 거리에 내걸리는 표지물이 아니다. ‘내세울 만한 학벌’의 의미다.
최근 발간된 대사전에도 ‘겉으로 내세우는 외모, 학벌, 경력, 명분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이런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속된 의미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증폭돼 통용되면서 잘못된 관념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은 실력이냐, 간판이냐’는 질문에 대해 ‘간판’이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고교생, 대학생, 학부모의 순으로 높게 나왔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학벌위주의 사회를 인정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증거다.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의 저자는 간판 위주의 학벌주의를 ‘현대판 계급제’에 비유했다.
줄세우기식 대학 평가와 ‘간판’에 따른 교수사회의 파벌 논란이 한국을 망치는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간판’ 하나로 버티는, 그럴싸한 겉모습만으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철퇴를 가하는 냉혹한 사회는 꿈으로 그치는 것일까.
21세기에도 전근대적인 ‘간판’은 여전히 위세를 발휘할 것 같다. /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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