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해온 탈레반 정권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구 소련이 내세운 나지 불라 정권에 무장 투쟁을 시작한지 불과 2년만에 1996년 9월 집권한 탈레반은 ‘샤리아’ 라는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며 아프간을 통치해왔다.
탈레반은 세계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파괴, 여성에 부르카 착용 강제, 공개처형 등 국제사회에 숱한 화제와 비난을 불러 일으키는 등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야말로 영욕의 시간을보냈다.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탈레반은 1994년아프간 북부와 파키스탄 서부에서 태동, 공산당 배격 및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96년 수도카불을 장악하고 시아파인 부르하누딘 랍바니 대통령을 축출, 집권했으나 당시 군벌들과 대화를 거부하면서 수많은 살육과 파괴행위를 저질렀다.
노동인구의40%인 여성의 교육과 취업은 물론 외출까지 규제했으며 율법을 어기면 가차없이 절단과 태형, 공개처형까지 서슴지 않는 등 계속된 내전으로 가뜩이나 피폐해진 국가를 더욱 얼어붙게 했다.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에 방해된다며 TV, 음악, 영화 등의 문화활동을 금지했고, 올초 바미얀 마애불 등2개의 석불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 같은 극단적 신정체제로 인해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UAE)등 3개국을 제외한 국제사회로부터 공식 정부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유엔에서는 망명정부를 이끌던 랍바니 전 대통령이 외교권을 행사해 왔다.
반면이슬람의 순수성을 가장 잘 구현했으며, 집권기간 중 강력사건이 거의 발붙이지 못하도록 치안을 완벽히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9ㆍ11 미국 테러의 용의자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인도요구를 끝까지 거부, 미국의 가공할만한 무차별 공습을 맞으면서 급속하게 기반을 상실, 항복하기에이르렀다.
지난달 9일 북부 요충도시 마자르_이_샤리프를 시작으로 13일 카불, 25일 쿤두즈에 이어 이날 칸다하르를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내줬지만, 아프간 국민을 볼모로 한 피의 항전을 고집했다면 그나마 질서를 잡아가고 있는 지금의 아프간 모습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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