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추곡수매가 건의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밤 농수산물유통공사 회의실에서 열렸던 양곡유통위원회는 5시간이 넘도록 끝이 날 줄을 몰랐다."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농촌은 큰 일이 납니다."
"다소 충격이 있더라도 지금부터 추곡수매가를 내려야 합니다."
"농민들에게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차 투표 끝에 내려진 결론은 추곡수매가 4~5% 인하.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원들이지만 쌀시장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다는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
이날 이후 위원들은 집으로, 직장으로 쏟아지는 항의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그로부터 20일이 지난 6일 오후 농림부 식량정책과에는 몇장의 팩시밀리가 들어왔다.
'위원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양곡유통위원 5명의 짤막한 사퇴서였다. 화들짝 놀란 농림부 고위간부들이 설득에 나섰지만 사퇴의지를 돌려놓지는 못했다.
"십자가를 맨다는 심정으로 추곡수매가 인하를 건의했는데 정부가 동결안을 채택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유통위원회가 존재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5년 동안 양곡유통위원회가 내린 3번의 동결 또는 인하 건의는 정부와 국회동의과정에서 모두 묵살됐다.
"돌팔매질을 당할 각오를 하며 수매가 인하를 건의했는데, 인하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역설하던 정부가 동결안을 내놓은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는 한 유통위원은 "농민들을 위해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확인하려면 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될 모양"이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김병주 경제부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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