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3년 12월7일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63세로 암살됐다.라티움의 아르피눔에서 태어난 키케로는 군대 생활을 거쳐 25세에 법조계에 진출했고, 31세부터는 시칠리아 섬 서부지역에서 재무관으로 일하며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키케로는 이내 정계와 법정에서 웅변가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는데, 그의 연설이지닌 호소력이 얼마나 컸던지 그것으로 재판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맡아 이긴 사건들이 모두 정의에 합당했던 것은 아니다.그는 ‘브루투스, 궤변, 웅변가’라는 책에서 자신이 웅변가로서 지닌 자질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
그 자질들이란 법률만이 아니라 문학 철학 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고 여담으로 배심원을 웃기거나 분노하게 하거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일반 원칙을 개별적 사건들에 응용하고 중요한대목에 사고를 집중하는 능력 따위다.
이런 자질들에 그가 지닌 인간적 매력이 더해져 그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가 되었다. 키케로가 정치가로서 자주‘콩코르디아 오르디눔(계층 사이의 화합)’을 거론한 것은그가 웅변술로 모든 계층의 로마인들에게서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고전 라틴산문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완성자라고 불리는 키케로의 철학은 대개 절충적인 처세 도덕론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리스 사상을 로마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해 로마와 그 이후의 유럽에 철학 어휘를 공급한것은 그의 큰 공이다.
키케로의 손을 거쳐서 라틴어는 철학 언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저술이 독창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내책들은 남의 생각을 베낀 사본이다.
나는 거기 낱말을 공급했을 뿐이다. 나는 낱말을 많이 갖고 있다”고그는 말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