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표정은 대개 엇비슷하다. 입학과 졸업, 방학, 시험기간 등 시즌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대학가이지만 대학별로 차이는 크지 않다.그러나 성신여대앞은 여느 대학가와 다르다.
4일 오후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1번 출구를 나와 국민은행앞 골목길로 들어서면 요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신곡들이 귓전을 찌른다.
노래소리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슬며시 빼는 여학생과 가판대를 슬쩍슬쩍 훔쳐보는 노랑머리 젊은 친구의 모습에서 이 거리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서울 성북구 동선동1가 성신여대앞. 흔히 ‘돈암동 카페골목’’성신여대 앞’으로 잘 알려진 젊은이들의 집합장소다.
저렴한 가격대의 옷가게와 미용실들, 패션 액세서리점, 분식점 등이 즐비해 중ㆍ고생들부터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 이르기까지 ‘개성 강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동네사람들은 이곳을 ‘리틀 명동’이라 부르는데,‘고딩’(고등학생들의 속칭)들에겐 ‘화려한 명동거리’나 다름없다고 한다.
서울의 유명한 ‘젊음의 거리’중에서 고딩들이 유독 많이 몰리는 이 거리는 전철역입구에서 성신여대 로터리까지 500여m 가량 이어진다.
신촌이나 압구정동 등과 다른, 이곳의 특징은 가격이 우선 저렴하다는 점.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등학생들이 특히 많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종류가 다양하고 개성 있는 상품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리틀 명동’의 자랑거리다.
거리에 들어서면 누구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내 멋대로 부담없이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거리의 백화점’이다.
몇 백원짜리 장신구에서 3,000~5,000원짜리 티셔츠가 늘려 있고, 멋쟁이 숙녀화가 2만원~3만5,000원, 비싼 롱부츠라고 해도 대개 8만원 안팎이다.
무늬스타킹이 5,000원이고 더블코트가 15만원선이다. 라디오가든, 클라이드, 니, TBJ진 등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와 화장품 세일코너 등 거리는 온통 ‘유행을 선도하는 제품’으로 가득 차 있다.
또 여학생들을 겨냥한 가방판매점 루카스에서는 가방 구입시 예쁜 필통을 무료로 제공하고 MLB에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뉴욕 양키스 등 메이저리그팀의 야구모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잘 나가는 것은 여전히 3만원짜리 LA다저스 모자.
성신여대앞의 또 하나 강점은 n세대를 겨냥한 깔끔한 먹거리들.
KFC와 파파이스, 명동돈까스, 피자헛 등은 기본이고 만두와 김밥 등 각종 분식점들이 번창일로에 있다.
주고객층은 역시10대 중고등학생들이다. 스위트번스와 디드락로스 등 테이크아웃 커피점과 과일빙수점 아이스베리에도 인파로 넘친다.
샌드위치 전문점 ‘자두’에선 샌드위치가 1,500원, 토스트가 900원, 생과일주스가 1,500원이다.
대형 히터가 돌아가고 있는 노천카페 ‘자바’에서 마시는 카페라떼의 맛도 젊은이의 호기심을 끌만하다.
동선발전회의 엄태용(48) 회장은 “유동인구 70%가 10~20대 여성이어서 이들을 겨냥한 ‘스타따라잡기 패션’이 거리의 테마가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리틀 명동의 명물은 역시 ‘길보드차트 리어카’들이다.
도로 곳곳에 자리잡은 가요 테이프 노점상들을 가르키는 말로, 이곳에서 최신가요의 인기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 애칭이다.
‘길보드 차트 리어카’와 같은 노점상들은 모두 40여개에 이른다. 그 종류도 떡볶이에서부터 특이한 여성속옷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돈암동 일대는 90년대만 해도 ‘10대들의 해방구’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 곳이다.
성신여대 졸업생 이모(30)씨는 “90년대 초 젊은이들 사이엔 돈암동이 압구정동에 이은 ‘야타족’들의 경연장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고 폭주족의 질주와 술 취한 고교생들의 패싸움으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또 술꾼들에게는 미성년자 접대부들이 많았던 ‘영계골목’으로 통했다. 그러나 당국의 지속적인 정화작업으로 지금은 변태영업 주점들이 거의 이 거리에서 밀려났다.
상가번영회 회장인 문경주(60)구의원도 “청소년 그린벨트지역으로 지정된 이 골목은 이제 신(新)명동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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