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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어느덧 황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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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어느덧 황혼인가

입력
200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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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깐수라는 이슬람 식 이름으로 귀에 익은 정수일씨가 열정적으로 책을 펴내고 있다.번역서 '이븐 바투타 여행기(2권)' 와 저서 '고대문명교류사', '씰크로드학' 등이 그가 지난 6개월 동안 펴낸 책이다.

책의 주제가 모두 진지하고 내용은 충실하며, 분량도 방대하다.

그것들은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간 복역하면서 이룬 학문적 결정(結晶)이라는 점이 여느 저작과 다르다.

분단시대의 모순과 갈등을 한 몸에 지니고 살아온 듯한 그의 행로 자체가 기념비적이다.

그의 저서는 또한 유랑으로 점철된 신산한 삶의 열매다. 중국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이슬람권에서공부하고 아프리카ㆍ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교수로 있었으며, 남북한 모두에서도 대학교수를 지냈다.

최근의 왕성한 집필활동은 그가 유랑을 끝내고 남한을 귀착점 삼아 학자로 생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로 보여, 반갑고 다행스럽다.

그 저서들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슬람 세계를 본격적으로 연구ㆍ소개하는 책이어서 학문적 가치도 높다.

성격은 퍽 다른 듯하나, 정수일씨가 살아온 역정은 작가 황석영씨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보여준다.

황씨 역시 만주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성장하고 소설을 썼으며 1989년의 방북과 관련해서 독일ㆍ미국에 망명한 후 귀국, 5년간 영어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분단시대의 지식인' 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터인데, 정씨는책 서문에서 "황석영씨의 정겨운 격려에 감사한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리얼리즘 미학에서 탁월한 성과를 여주는 황씨는 '장길산' '객지' 등의 소설로 일찍부터 한국문단을 대표해 왔다.

그는 지난해는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을, 올해는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래된 정원'은 1980년대적 이념적 모색과 실천을 위한 투쟁, 그 과정에 싹튼 사랑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다룬 소설이다.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손님'은 해방공간과 6ㆍ25전쟁 중 황해도 신천군을 배경으로 외래 문화인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 뒤엉켜 빚어낸 학살의 비극을 실험성 강한 플롯으로 보여주고 있다.

황씨는 최근 수상식 자리에서 "1970~80년대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도 있는데 상을 받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었다" 고 말했다.

지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의미다. 정씨와 달리 그는 감옥에서는 작품을 전혀 쓰지 못했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동안 마음 속에서 두 소설은 거의 완벽한 얼개가 갖춰졌고, 출옥하자마자 잇달아 발표되면서 다시 한번 문단의 비상한 관심에 답했다.

두 소설은 남북의 이념적 갈등, 개인의 자유문제 등을 정치하게 교직시키면서 모처럼 독자를 장편소설다운 주제로이끌어 간다.

현 정부가 추진해온 햇볕정책은 분단모순에 맞선 사람들이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결실이지만, 그 정책의 온기는 북뿐 아니라 남 내부에도 미쳐서 생산적 환경을 만들었다.

정수일 황석영씨가 근래 집필에 몰두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형벌의 좌절과 울분을 집필로 승화시킨 전형적 예는 전한(前漢)의 사마천이다.

그의 방대한 역저 '사기(史記)'는 '천도(天道)란 과연 있으며,있다면, 그것은 옳으(是)냐 그르(非)냐' 라는 외침으로 요약된다.

이는 역사를 평가하는 시간의 단위가 길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북쪽의 모호한 태도와 거야(巨野)정국 속에 햇볕정책도 퇴조하는 기미가 역력하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겠지만 무리하게는 하지 않을 것" 이라고 밝혔다.

햇볕정책의 황혼과, 주역의 피곤이 느껴진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북한 퍼주기'에 그친 것은 아니다.

두 지식인의 저술은 햇볕정책이 국민의 심리적 안정과 문화적 생산성에 기여해 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박래부 심의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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