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자 국내 일간지를 휩쓴 기사는 2002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기사이다.수험생의 평균점수 하락을 알리는 기사, 절망하는 수험생 표정을 스케치한 기사, 점수별 대학선택을 안내하는 기사들이 지면을 '도배질'했다.
언론 비판적인 인사들은 한 마디씩 할 법하다. "외국신문들은 이렇지 않다." "대대적인 보도로대입경쟁을 부추기는 것 아닌가."
사실, 어느 나라 신문도 우리 신문들처럼 대입기사로 지면을 메우는 일은 없다.
수능시험결과 발표날이면 1면부터 사회면에까지 보도, 평가, 방향제시기사를 빠짐없이 싣는 신문은 없다.
변명하자면 수험생과 학부모의 최대관심사를 수용하려는 노력이다.
신문의 수능시험 보도는 부작용을 부르기도 한다. 2001년도 시험문제는 너무쉬웠다, '물수능'이었다는 평가 때문에 이번 시험 출제자들은 '어려운 출제'를 다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올해 수능시험출제를 너무 어렵게 한 것은 교육인적자원부의 잘못이다. 신문탓이 아니다. "입시와 평가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 및 시행"을 표방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www.kice.re.kr)을 거느린 교육부는 당연히 난이도를 적절히 조정했어야 한다.
"너무 쉽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여 "너무 어렵게" 문제를 낸다면, 또 사후 "송구스럽다"는 사과나 한다면, 전문부서와 전문연구기관이 아니다.
한편, 일부 수능시험 출제위원은 올 수능시험문제가 어려웠어도 "입시는 석차에 의해 결정되니까" 못한 것 없다는 주장을 하여 우리를 실망시킨다.
교육당국은 출제위원의 그런 잘못된 인식에도 책임이 있다. 정부주관의 입시목적은 아이들을 놀라게 하거나 주눅들게 하는 것이 아니며 감정이 여린 아이를 걸러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올 수능시험을 둘러싼 교육인적자원부의 가장 큰 잘못은 수능시험 석차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수능등급제를 도입한다고 예고했다. 수험생성적이 계열별로, 또 시험과목별로 어느 등급에 속하는가만 발표한다고 예고했다.
당시, 그 이후, 신문들은 수 차례 예상되는 혼란을 지적했다.
총점의 점수 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그렇지 않은 대학보다 많은데 석차가 공개되지 않으면, 수험생의 대학선택에 대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좋은 동기'만을 고집하였다.
대학이 수능시험 총점 점수 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막는다는 동기이다.
현실과 괴리된 동기다. 동기만 좋으면 여건과 부작용 무시하고 추진하면 된다는 착각을 일깨우려면 종교재판 같은 역사적 사건들까지 들이대야 하는 것일까.
좋은 정부기구는 국민을 당황하게 하지 않는 기구일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교육당국도(www.ed.gov) www.dfes.gov.uk)국민으로부터 비난 받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정책을, 입시제도를 금방금방 바꿔 국민을 당황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박금자 편집위원
par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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