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부에 붙이는 여성용 피임약(패치)이 개발됐다는 해외 뉴스가 있었습니다.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개발한 이 피임약은 여성이 아랫배나 엉덩이에 붙이기만 하면 피부를 통해 호르몬이 체내에 전달돼 피임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마다에는 여성의 매끈한 허리 부분에 실제로 피임약이 붙어있는 사진이 실려 있더군요.
붙이는 피임약은 아무래도 먹는 약보다 편리하겠지요.
피임약은 현대 여성이 원하지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게 해 준 1등 공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성 피임약의 개발을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해석하자니 무언가 아쉽다는 느낌입니다.
피임약 개발에도 남성 우위 성문화 이데올로기가 반영돼 있다고 주장한다면 비약일까요.
피임약에 관한 한 남성용보다 여성용이 압도적입니다. 남성 피임약은 아직 국내에 나와 있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개발 단계에 있습니다.
업계에선 국내에서 남성 피임약의 상용화는 5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남성 피임약의 개발과 상용화가 더딘 이유는 기술적 문제보다 남성들의 심리적 요인이 크다고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설명합니다.
남성이 피임약을 복용하면 남성다움과 성생활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성 피임약 사용을 꺼리게 한다는 거지요.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피임에는 협조해 주지 않으면서 여성이 임신하면 책임을 떠넘기는 남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지요.
성이 개방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이 성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받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여성 입장에서 남성과 상의 없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여성 피임약이 발전한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털어놓고 보니 남성 기자입장에서 반성할 게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나누는 것이지만 ‘피임은 여성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비상용으로 비아그라를 지갑에 넣고 다니는 대신 피임약을 휴대하고 다니는 남성이 많아지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진정으로 아낀다면 말입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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