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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문어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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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문어발 한국인

입력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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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을 때 학교 캠퍼스 안에서 껴안고 키스하는 학생들을 보고 한국유학생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도 않냐”고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나는 “그 사람들의 일인데 남들이 왜 상관하느냐”고 대답하면서 그 유학생의 질문이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온 후에야 그 학생이 그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중국 사람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남들에 대한 관심이 많고 남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의 영역만이 아니라 항상발을 사면팔방으로 내밀고 있는 문어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신경을 쓴다.

한국사람은 만나자마자 나이부터, 학번, 고향, 자매 수, 출신학교를 물어본다.

어떨 때는 부모님 직업, 심지어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만난 지30분 안에 일일이 다 캐묻는다. 여자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만국 공통의 실례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례지만 몇 년생이세요?”라고 꼭 물어본다.

그래서 중국 유학생들은 농담으로 한국 사람이 다 호적경찰관(중국에서 호적 관리하는 일은 호적 경찰들이 한다)이라고 한다.

‘호적경찰’앞에서 나의 개인 비밀은 하나도 지킬 수가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중국에 있는 식구들까지 다 보고를 했으면 이미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꼭 이성 친구라는 최후의 비밀까지 알고 싶어 한다.

중국에선 친한 사이가 아니면 애인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나이 많은 사람이 중매를 서려고 젊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묻지만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여자에게 “남자 친구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너에게 호감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애인에 관한 질문을 받고 너무 당황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왜 나한테 애인이 있는지를 물어보는지, 나에 대해 무슨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긴장했다.

이렇게 개인 정보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을 피하려 해도 문어발에 한번 잡히면 도망가기가 어렵다.

평상시에도 나는 매일 주변 사람들에게 내 행동을 보고한다.

연구소에 들어가면 “어디서 뭘 하고 왔는가”에, 나올 때는 “어디로 뭐 하러 가는가”에 대답해야한다.

기숙사 친구에게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 나중에 들어갈 때 공부를 많이 했는지 사후 검증을 받는다. 전화를 받으면 전화한 사람이 누구고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에 대해서도 보고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행동을 물어보고 또 상대방에게 자기의 행동을 보고한다. 이런 질문과 대답은 일상의 인사말처럼 쓰인다.

문어발이 제일 무서울 때는 사람들이 모여 남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 때다.

한국인들은 옆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기 좋아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꼭 흉보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그것이 악의 없는 ‘스트레스 해소용’이라고는 생각한다.

중국에는‘중구삭금'이라는 말이 있다. 입이 많으면 금도 녹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입이 무서운 것이라 아무리 악의가 없다 해도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외국에 나가서도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 행동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한국사람도 보았다.

‘문어발’이란 단어의 부정적인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결국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상대적 기준으로 볼 때중국은 농업 국가이고 한국은 공업 국가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문어발’문화, 공동체의식, 그리고 사회구조면에서 중국보다 농업사회의 특징을 오히려더 많이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왕샤오링 중국인 경희대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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