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토머스 맬서스의 공포의 논문 덕분에 농업은 옛 '영광'을 되찾는 듯 했다.인구증가와 식량생산은 토끼와 거북 경주처럼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에 인류 멸망이 자명하다는 '인구론'이농업에 대한 관심에 불을 당겼던 것이다.
바야흐로 농업은 근대 산업혁명의 열풍에 밀려 국가경제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던 중이었다.
이 때가 한 때 '산업의 제왕'으로 예찬되었던 농업의 마지막 전성기다. 맬서스의 예언마저 이미 그가 죽기 전에 비약적인 식량증산으로 빗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농업이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장경제 운용의 걸림돌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왜냐하면 농업이야말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순수 시장경쟁 모형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작물 생산량이 약간이라도 넘치거나 모자라 가격이 널뛰듯 폭락ㆍ폭등하는 것은 당장 우리 주부들이 시장에서 수시로 체험하는 바다.
어떤 공산품이나 서비스상품도 농산물처럼 수요ㆍ공급의가격 원리에 충직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농업이 너무 순진무구해서 탈이다. 그것은 농업이 본래 '신의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환상적인 과학 영농도 하룻밤 천기 변화에 쑥대밭이 되니 그 앞에서 인력(人力)은 한낱 새털에 불과하다.
다른 업종에서 흔히 벌어지는 생산과 가격 담합과 같은 인위적 시장조작에 애초에 한계가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생산주체는 물론이고 국가경제 전체가 뻔히 알면서 화를 당하는 자기파괴적 역리가 빚어지는 게 바로 농업인 것이다.
■농업에 정치논리가 개입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문제는 그 논리가 국가 대도(大道)나 농민 이익보다 정치인의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의 도구로 변질되는 데 있다.
우리 쌀 농업이 뉴라운드 위기를 맞았다. 태풍이 밀려오는 데도 정치권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농민들이야 당장 정치권이 힘을 써주니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약인지 독인지 따져본 후 그 힘을 활용해야 한다.
훗날 자손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우리 조상과 정치꾼들의 농ㆍ정 합작 유산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한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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