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는 과거의 기사를 열람할 수 있는 두툼한 검은색 파일이 있다.이는 기사스크랩으로 창간 때부터 최근까지의 신문기사가 항목별로 분류되어 있다.
입사해서 막 두해를 넘겼을 때인 1990년 11월께 였다. 한국일보사 주최 사업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1,300리 길을 이어 달리는 부산-서울 대역전경주대회를 앞두고 스크랩을 뒤져봤다.
흑백사진과 함께 낯선 맞춤법로 쓰여진 기사가 모여있었다. 1958년에는 선수들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사진, 1989년엔 때이른 첫눈을 맞으며 달리는 사진 등 다양한 장면이 펼쳐졌다.
취재차량에 몸을 싣고 카메라의 망원렌즈를 통해 선수들의 경기모습을 취재하는 작업이 출발지인 부산에서부터 시작됐다.
선수들은 출발신호와 함께 목표지점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나갔다.
농촌구간을 달릴 때는 하교 길 초등학생들이 선수들을 응원했다. 더러는 책가방을 맨 채 선수의 뒤를 따라 달리기도 했다.
국도 위를 달리는 경기라 철도 건널목을 지나는 경우도 있었다. 열차가 지날 때면 차단기 앞에 선수들이 멈춰서는 진풍경도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 가는 농촌 마을에선 시·도를 대표하여 북상하는 젊은 선수들을 향해 응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533.3km를 달려골인 지점인 임진각에 들어서는 마지막 날, 첫 눈에 보이는 것은 평양을 비롯한 북한 도시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대형 안내 지도였다.
모두가 이곳에서 멈춰야 했다. 일주일간의 장정이 무리 없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이어 달리는 남북 통일마라톤을 취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흥분될까"라는 상상에 빠져버렸다.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축구대회도 벌어졌고 남북 정상회담도 열렸다.
이산가족도 상봉할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 마다 “곧 남북한 선수가 한반도를 이어 달리는 통일마라톤대회도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쉽게도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기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의 염원을 안고 시작된 부산-서울 대역전경주대회는 수많은 훌륭한 마라톤선수를 배출했다. 특히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황영조,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이봉주 등이 그들이다.
덕분에 이 대회는 마라톤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는 역할도 했다. 사람들이 집근처 공원길을 밤낮없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운동화의 수요가 늘어났고, 한강 시민공원에선 매주 말 크고 작은 마라톤행사가 열리고있다.
주위에는 하프마라톤에 도전하거나 더러는 전구간을 완주했다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18일 끝난 47회 대회에선 동호인 릴레이전이 구파발에서 동시에 열려 마라톤 매니아 375명이 통일로를 함께 달렸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임진각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임진강 동편에 새로 놓인 통일대교를 바라보며 그들도 개성까지 달리고픈 마음 간절했을 것이다.
오대근 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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