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쌀시장 개방협상을 앞두고 정부가 최근 일정부분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최소 시장접근 방식 대신 관세를 매겨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관세화를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농민들이 반발하고 있다.정부는 "쌀시장개방을 확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민경제나 농업 경쟁력을 위해서도 관세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 반해 농민들은 "쌀 문제는 단순 경제논리로 풀 수 없으며 개방에 앞서 피폐한 농촌 문제에 대한 대책이 먼저 강구돼야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찬성-송유철(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
쌀은 우리 주곡으로 농업총생산의 30% 이상, 총 경작면적의 60%를 차지하는 품목이다.
이렇듯 중요 품목인 쌀에 대해 우리가 종전 최소시장접근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관세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쌀과 농민소득을 지키는데 어떤 방식이 더 유리한가에 달려있다.
현재 우리 농업계에는 쌀의 관세화는 쌀 가격 인하와 쌀 재배면적의 급속한 감축을 가져와 농업기반자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신앙과 같은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
현실을 돌아보자. 우리가 2004년 쌀 협상에서도 관세화를 유예 받으려면 2004년까지 국내수요의 4%를 수입하겠다고 한 약속을 확대해 더 많은 양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국민 소비패턴의 변화에 따라 쌀 소비량이 점차 줄어들고 현재도 쌀이 남는 마당에, 추가로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게 되면 우리 경제가 안고 가야 하는 부담은 매우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쌀의 관세화 유예를 인정 받았던 일본은 필요하지도 않은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부담에서 탈피하기 위해 예정기간보다 먼저 쌀을 관세화 했다.
관세화 이후 수입량은 종전의 의무수입물량보다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고 쌀 가격이나 재배면적이 급속히 감소하지도 않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일본의 경우와 많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도 관세화를 하더라도 적절한 보상수단을 통해 농민의 영농의지를 유지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쌀산업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쌀에 대한 관세화를 반대하는 주장은 관세화로 인한 관세수입증대, 소비자잉여증대 등의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관세화에 의해쌀 수입이 개방되고 쌀 가격이 낮아지더라도 농민들에게 감소하는 소득을 보전해 줄 수 있는 보상수단을 실시한다면 쌀 생산량은 단기적으로는 거의 일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약간 감소하는데 그칠 것이다.
따라서 WTO에서도 허용되는 여러 보조금을 활용하고 관세수입을 농민에게 이전해 주는 등의 방안을 강구한다면 관세화가 최소시장접근 물량의 확대보다는 유리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더불어 국민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고기능쌀이나 유기농쌀에 대한 수요증가에 대비한 국내 생산구조의 변화도 추진하여 농가소득의 향상을 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에 의한 일방적인 관세화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농민, 정부, 농업관련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방법이 농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냉철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반대-박정근(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2004년 쌀 재협상을 앞두고 최소시장접근에 의한 관세화 유예와 관세화의 근본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관세화 유예는 협상결과에 따라 시장기구와는 독립적으로 쌀수입량이 결정된다.
그러나 관세화는 관세를 매개로 국내외 시장이 연결돼 인구, 소득, 생산요소가격, 기술, 환율 등의 변화에 따라 시장기구에 의해 쌀수입량이 결정된다.
경제학자들이 관세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시장에 의해 농민들의 생산활동이 장기적으로 조정되며 현실적으로 관세화유예보다 쌀 보호효과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민들도 WTO체제에서는 쌀수입 개방의 현실을 직시하고 정부의 쌀수매정책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쌀 문제는 정치논리로 접근했지만 이제 시장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쌀이 단순한 경제재라면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적절하다. 경제재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배분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이 단순한 경제재라면 국제사회에서 WTO체제를 만들기 위해 8년이라는 긴 세월을 UR 협상으로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총인구 중겨우 8.7%에 불과한 농민들 표 때문에 수매가를 인상하는 데 앞장 선 정치인들이 모든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쌀은 단순한 경제재가 아니다. 농민의 후생문제와 농촌의 지역불균형 문제가 혼합된 사회문제다.
단순히 관세화라는 시장메카니즘으로 풀기 어려운, 농업의 역사성까지 뒤섞인 정치문제였다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시장논리로 쌀 문제를 풀었을 때 농업구조조정을 통해 농업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쌀 생산 농가의 75.7%에 달하는 1ha미만의 영세농가와 농촌을 지키는 절반이 넘는 50세 이상의 농민, 그리고 피폐한 농촌의 문제를 관세화로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선택한 쌀 수매정책은 이 어려운 농업, 농촌, 농민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었지만 결국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시장기구에 맡기기에 앞서 농민문제와 농촌문제를 풀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농민들이 관세화 유예나 수매가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농정불신에서 나온 자구책에 불과하다.
농민들은 수매를 통해 손에 쥔 현금외에 정부의 어떤 약속도 믿지 않는다. 관세화 주장은 현실을 보는 눈이 너무 단순한 측면이 있다.
전략적 측면에서도 관세화가 정말 유리할 때 관세화로 바꿀 수 있는 신축성있는 협상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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