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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조심스러운 낙관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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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조심스러운 낙관의 시절

입력
2001.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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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라는 꼬리의 온갖부패 스캔들을 알리는 신문 지면의 한켠에 내년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들의 연쇄 인터뷰가 실렸다.시민들은 거기서 기시감(旣視感)을 겪으며 김대중 정부를 위한 만가(輓歌)를 듣는다.

민심의 이반을 거듭 확인하고도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정부나 여당의 행태를 보고, 그리고 오직 정부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라면 국익이든 민족의 이익이든 보편적 양식이든 모든 것을 내팽개치는 야당이나 수구 언론의 행태를 보고, 한국 정치의 희망을 접어버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소설가 복거일씨의 어느 글 제목을 훔쳐, 지금이 '조심스러운 낙관의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12월에 새로뽑힐 대통령은 제6공화국의 네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를 자임했고,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를 자임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정치적 이름표일 뿐 법적으로 우리는 1988년 2월 이래 제6공화국에 살고 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문을 연 제6공화국에 우리가 살고있다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행정(行程)에 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제6공화국은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불러 마땅할 1987년 6월항쟁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제6공화국 14년을 되돌아보며 기자는 흐뭇해지려고 애쓴다. 그것이 근거 없는 일만도 아니다.

노태우 정부는, 뒤에 밝혀진 노태우씨 개인의 파렴치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시동을 걸었다.

그 시절에도 고문의 관행은 남아 있었지만,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부 같은 유사 파시즘 정부는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는, 막판에 외환 위기를 맞기는 했지만, 우리 정치 문화에서 군사 쿠데타의 가능성을 도려냈다는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그것이 역사의 큰 흐름이기도 했지만, 일거에 정치 군부를 숙청함으로써 군대의 문민 통제를 확립한 것은 김영삼씨 개인의 결기가 아니었다면 쉬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광복 이후 처음으로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 교체를 이루어 한국의 민주주의를 더 진전시켰다.

이 정부는 비교적 빠르게 외환 위기를 극복했고, 무엇보다도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비록 지금 남북관계가 시련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이 역사적 사건은 장래의 남북관계에 긍정적 벡터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감옥에는 양심수들이 갇혀있고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옥죄고 있지만, 김대중 정부의한국이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자유로운 사회인 것도 사실이다.

내후년 2월에 들어설새 정부 아래서도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질 것이다.

내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난 30년간 한국 정치를 규정했던 지역주의의 역학이 조금 느슨해질것이다.

정치 지형의 변덕으로 영호남 출신 후보가 맞붙게 된다면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되풀이 될 수 있겠지만, 기자는 낙관적이 되려고 애쓴다.

내년 선거에서 지금의 야당이 권력을 되찾는다고 해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행진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나 김대중 정부 시절에나 적어도 대통령 개인들은 평균적 국회의원들보다 더 개혁적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국회의원들보다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 그들은 국회의 수구 지향을 중화시키며 그 나름대로 개혁을 추진했다.

기자는 지금의 야당 지도자도 그러리라고 믿는다. 지금의 여당이 개혁적 후보를 내세워 다시 집권할 경우, 새 정부는 우리 사회 여러 영역의 민주화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다.

제6공화국 14년의 역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짙은 어둠을 드리웠다는 것을 기자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간에 우리가 민주주의 나무를 조그씩 키워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조심스러운 낙관의 시절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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