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대공사건을 국정원 요청에 따라 인계한 것은 절차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는 보고를 받았고, 당시 수사관들도 불만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27일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이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 국정원의 압력으로 경찰의'수지 김 살인사건' 수사가 중단된 곡절을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이 청장은 이같이 답했다.과연 그의 말대로 경찰은 정당했을까. 결론부터 내리면 결코 정당하지 않았고, 경찰청장의 안이한 상황인식을 드러낸 대목이다.
지난해 2월 경찰이 '수지 김 사건은 살인사건'이라는 혐의를 잡고 수사에 착수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들이 대공사건이란 명목으로 수사중단을 요청했고, 경찰은 이를 수용했다.
규정상 국정원장이 관련기관에 대공수사의 지도ㆍ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러나 경찰입장에서는 당시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했던 것이다.
경찰청장의 말대로 수사중단이 '정당한 조치'였다면 앞으로도 다른 기관이 대공사건을 들먹이며 수사중단을 요청하면 또 수용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이 말은 수지 김 같은 간첩조작 희생자가 또 나올 수도 있다는 섬뜩한 가정과도 통한다.
국정원은 살인사건의 수사권이 없음을 정말로 몰랐었을까.그렇지 않다. 경찰이 인권과 직결된 수사권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결과론이지만 이무영(李茂永) 당시 청장이 조작임을 알고도 수사중단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권 포기에 대한 질책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따라서 경찰청장은 이렇게 말했어야 옳다. "보고는 그랬지만 앞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정진황 사회부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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