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부근의 한 복사점. 여러대의 대형 복사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옆에는 제본기가 설치되어 있어 순식간에 책이 한 권씩 복사되어 나온다.
심지어는 구내에 복사점이 있는 대학도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지난 학기 초 한 대학서점에 교과서로 채택된 책 120권을 납품했지만, 5권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가방에 있는 책 중 90%가 복사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생이 아무 생각없이 복제품을 찾는다.
■범문사 박영사 다산출판 등 대학교재와 학술 전문 출판사 500여 곳이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불법 복사 행위 근절을 위한 정부의 획기적인 조치가 있을 때까지 저술과 출판 활동을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저작권 보호를 위한 한국복사전송관리센터가 출범했는데도 대학가에 있는 복사업체들의 불법 복사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출판사 등록증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얼마 전 대학교수의 논문 표절 사건이 국제적인 망신을 부른 적이 있었다.
표절과 불법 복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둘 다 다른 사람의 지적 생산물을 몰래 도용하는 몰염치한행위다.
이를 두고 '복사판 교재로 공부하며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에 길들여진 탓'이라고 질타한 한 관계자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기초 학문 위기를 염려하는 대학이 뒤에서는 오히려 위기를 더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오죽했으면 출판사들이 등록증 반납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했을까. 생존의 위기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학술서적의 경우 반품률이 85%에 이르는 등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가없다.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을 불러도 작사ㆍ작곡자에게 저작권료를 주어야 하는데,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쓴 책을 몰래 훔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또 불법 복제는 통상마찰을 불러 일으킨다. 벌써 미국 등이 우리 출판시장을 면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안팎으로 크게 망신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의 강력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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