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 단지가 갑자기 정전이 됐다. 주민들이 당황하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전기회사는 무엇을 하는 거야” “비상전원 공급시설도 없나” “이 따위 밖에는 할 수 없는 거야”시간이 흐르자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내친 김에 잠이나 자버리자며 잠자리에 들어가 버렸고, 어떤 사람은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명상에 잠기고, 어떤 사람은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사람은 촛불을, 어떤 사람은 비상용 전등을, 어떤 사람은 등산용 램프를, 어떤 사람은 낚시용 개스 랜턴을 켜놓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한참 뒤 전기가 다시들어오고 아파트 단지가 다시 밝아졌다. 그러나 잠자던 사람은 아주 잠이 들어 계속 잠을 자고, 멍하니 있던 사람은 겨우 정신을 차려 밥 지을 준비를 하고, 명상에 잠겨있던 사람은 오히려 불빛이 싫어져 그냥 불을 끈 채로 있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름대로 불빛을 밝히고 일하던 사람들은 본격적인 일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새 일을 끝내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DVD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IMF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요즈음에는 그나마 경제를 지탱해 왔던 IT산업마저 위축돼 이젠 IT산업도 죽었다는 암울한 소식마저 접하고있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주관한 제1회 디지털 이노베이션 대상 후보 100개 기업을 심사하면서 이같은 이야기는 단지 우려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불황을 이야기하며 당황하여 웅성거리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잠을 자고, 멍청히 앉아 있는 사이에도 희망으로 불을 지피고 노력하는 많은 기업들이 있음을 알게됐다. 이 기업들이야 말로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미래이다.
어떤 기업은 네트워크장비 분야에서, 어떤 기업은 무선 데이터 통신 분야에서, 어떤 기업은 방송기술 분야에서, 어떤 기업은 인터넷 전화 부문에서, 어떤 기업은 교통정보시스템에서, 그리고 어떤 기업은 이동통신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정체성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기업중에서 일부를 선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기술, 경영, 제품, 투자, 안정성 등의 분야를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평가함으로써 선정의 공정성을 갖추려 노력하였다.
우리는 혼신의 땀 방울과 핏 방울로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을 디지털 이노베이션 대상 후보로 선정하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곧 다가올 호황기에는 이들 기업들이 주인공이요 수혜자임을 안다. 왜냐하면 바로 이들이 정전 속에서도 일하는 우리의 이웃이요, 희망이요, 미래이니까.
/심사위원장-임선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무선방송연구소 책임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