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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더 낮은 곳에, 더 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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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더 낮은 곳에, 더 작게

입력
200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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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은 군(郡) 단위 지역에서 발행되는 작은 언론이다.6월항쟁의 결과물로 세상에 처음 나와 이제 12년이 넘었다. 최근에 스스로 밝히기를 3,500부를 찍어 3,216부를 배포한다고 한다.

한낱 시골 신문일 뿐인 이 작은 지역언론이 ‘화제’인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다.

어떤 점에서는 매우 유명한 신문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그 저명(著名)이 아니라 그 철저한 풀뿌리 됨이다.

오로지 풀뿌리 구독료와 풀뿌리 광고 수입만으로 지난해 수지결산에서 ‘흑자’를 냈다.

우리사회에 재벌 버금가게 거대화한 언론도, 재벌 자신인 신문권력도 없는 바가 아니지만, 여느 재벌기업이 나눠주는 광고 한번 받아먹은 일 없이 신문찍어 ‘이문’남긴 이 겁모르는 시골 언론 이야기, 그 풀뿌리 신화는 너무 작아서 더욱 커보이는 이 시대의 성공담이다.

우리사회, 우리 정치, 우리 나라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지역의 풀뿌리 언론이 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한 소장 언론학자가 최근 그의 저서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를 펴내면서, 그 책의 중요 챕터로 ‘옥천신문 방문기’를 실었다.

그는 전직원 8명이 관행, 권력, 압력, 연고 따위 ‘악의 유산’들과 좌충우돌하는 현장에서 우리 언론의 새 희망을 발견한다.

특히 그들의 방을 지키는 한 초라한 휘호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액자 속의 글씨는 ‘낮은 곳’이다.

그들은 거기 앉아서 지역 주민들이 전화로 걸어오는 ‘세놉니다’ ‘팝니다’ 안내광고를 접수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주민들과 질기게 ‘연대’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 모든 풍경은 낮고, 작고, 소박하다.

우리사회의 모든 병은, 언론을 포함해서, 큰 것, 많은 것, 높은 것만을 찾는 ‘거대화 추구’증후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저자의 목소리가 숨어있다.

민주적인 과정이 무시된 민주주의, 질이나 정신에 앞서 발행부수만이 중요한 신문 경쟁의 현실도 같은 현상이다.

숫자가 크다 보면, 그 숫자가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하지를 못한다. ‘거대화 추구’가 병이라면, ‘거대화 불감증’은 더 심각한 병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누구도 따져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이 보이는 공적 자금이며 나라 빚이며 그를 누가 언제 어떻게 갚는가 하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11월에서 12월로 넘어가는 지금은 4년 전 우리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구걸하던 아슬아슬한 때다. 생각하면 뼈속 깊숙이 추위가 닥친다.

그 4년간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을 수렁에서 건져올리려 퍼부은 공적자금이 159조원이다.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하는지 ‘누구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명의로 된 국가의 직접 채무도 120조원이고, 거덜난 각종 연금, 건보등 사실상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채무까지 합하면 나라 빚은 400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빚더미는 원리금상환이라는 꼼짝못 할 압박으로, 앞으로 몇 대에 걸칠지 모를 ‘빚쟁이로 태어나는 국민’에게 족쇄가 될 것이 분명하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감사원이 고발한 공적 자금 따먹기 행태에 접하면, 국민은 더이상 할 말을 잃는다.

너도 나도 ‘먹고 보자’판이 되어버린 이 극악한 도덕적 해이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것을 똑바로 알아 봐야 한다.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국가 신용등급이 올랐다고 해서 지금 ‘저점론’을 내세우는 식의 낙관은 성급하고 어리석다.

황금칠한 굴비세트가 없어서 못팔고, 대선후보로 출정하는 모임이 몇만명을 모아 몇십억원씩을 쓴다 하고, 무엇보다도 나라빚 400조가 무서운 줄을 아무도 모르는 기고만장한 이 생각없는 세태가 정작무섭고 또 두렵다.

정달영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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