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차가워질수록 문청(文靑)의 가슴은 뜨거워진다.신춘문예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신춘문예는 현재는 한국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학 신인 등용문이다.
등단의 입구가 다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권위 있는 등단 제도로 꼽힌다.
한국일보는 창간 이듬해인 1955년 신춘문예 제도를 시작해 지금까지 260여명의 작가를 배출하면서 한국 문단의 디딤돌을 놓았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소설 부문 최종심에서 윤흥길(59)씨와 윤후명(55)씨가 마지막까지 겨룬 끝에, 윤흥길씨의 ‘회색면류관의 계절’이 당선작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은 소설가 고(故) 김동리, 황순원이었다. 황순원은 이후 몇 년 동안 윤흥길씨를 만날 때마다 “자네와 함께 겨뤘던 친구는 아직 문단에 안 나왔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 얼마 전 이미 시인으로 등단했던 윤후명씨는 11년이 지난 1979년 다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도전한다.
윤후명씨를 탈락시켰던(?) 윤흥길씨가 이번에는 이 해 신춘문예의 예심위원을 맡았다. 마침내 윤후명씨가 ‘산역’으로 당선된 뒤 윤흥길씨는 “이제야 내가 짐을 벗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수많은 글이 있지만, 신문이나 역사, 법조문이나 계약서, 학문에 관한 저서같은 글이 있지만, 인간과 인간의 삶을 생생하고 절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글은 소설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불문과 대학생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면서 털어놓은 고백이다.
이 젊은이는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 내내 도서관에서 소설을 썼고, 단골로 다니던 다방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원고를 보여줬다.
괜찮은 것 같다는 친구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고, 원고를 다듬어 그 해 신춘문예에 투고를 했다. 1962년 정월 초하루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화려하게 지면을 장식한 김승옥(60)씨의 단편 ‘생명연습’이었다.
김승옥씨는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후 학림다방에 모인 친구들이 소설가 박태순과 평론가 김화영”이라고 돌아보면서 “당시 독문과에 다니던 이청준도 다른 신문의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고, 당선의 꿈을 안고 순천의 우리 집으로 함께 내려갔다”고 밝힌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씨는 상금으로 대학에 등록해, 군대에 가지 않고 3학년을 다닐 수 있었다.
소설가 최인호(56)씨의 ‘까까머리 신춘문예’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서울고 2학년 재학 중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벽구멍으로’를 투고했다.
이 작품은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다. 가작 수상은 머리를 빡빡민 고교생에게 신춘문예에 대한 독한 열망을 품게 했다.
“반드시 당선해야겠다”고 결심한 최씨는 대학 입학 2년 뒤인 1966년을 “신춘문예 잡아먹는 해로 정했다.”
그는 그 해에 15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타인의 방’ ‘술꾼’ ‘견습환자’ 등 그의 초기 단편은 신춘문예를 노리고 쓴 작품들이다.
열정으로 가득찼던 그는 짧은 시간 무섭도록 많은 글을 써냈다.
“‘타인의 방’은 4시간 만에, ‘술꾼’은 2시간 만에 쓴 것”이라고 최씨는 회고했다.
많은 문학청년들처럼 그도 당선소감을 준비해 놓았다. 1967년 1월 그는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상사가 들어와 “훈련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상사는 “고등고시에 합격한 훈련병이 있다”면서 최씨를 가리켰다.
단편소설 ‘견습환자’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것이다. 그는 오만하게 되물었다. “한 군데 뿐입니까?”
최씨는 “몇 군데의 신문사에 투고한 작품들이 모두 당선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만큼 자신만만한 젊음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라고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껄껄 웃었다.
시인 이윤학(36)씨는 1990년 신춘문예 당선이 결정됐을 때 여행을 떠나 버려 당선 통지를 해야 하는 담당 기자의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한 묶음으로 보낸 17편의 시 가운데 ‘청소부’와 ‘제비집’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그는 이제 4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 시인이 됐다.
“등단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씨는 “그러나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황홀한 의식을 거치고 나면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등에 지워진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한다.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공모는 12월 6일 마감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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