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수야, 너 가서 음정 익혀와. 노래도 심심한데 톤까지 심심하면 관객이 지루하지 않겠어? 그리고 호동이, 너는 바이브레이션(음 떨림)자꾸 넣지마. 지금 호동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도 아닌데 왜 잔 바이브레이션을 넣니?”22일 오후 예술의전당 음악당지하 연습장.
창작 뮤지컬 ‘바람의 나라’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형주(39)씨의 심기가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12월 29일 첫 공연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일까. ‘들풀’ ‘가스펠’ 등 4~5편의 뮤지컬 음악감독을 맡았던 그도 연신 담배만 피워댄다.
이 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배우 하나가 물었다. “여기는 7중창이니까 코러스가 필요 없지 않나요?”
이 감독의 동문서답. “호동이, 너 가서 사비 데려와. 땡글아, 너는 발음을 좀 뭉개봐.”
‘바람의 나라’(제작 서울예술단, 연출 김광보)는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안근호)과 낙랑의 공주 사비(김선영)의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동명 인기만화의 원작자 김 진씨가 대본을 쓰고, 영화 ‘은행나무 침대’와‘쉬리’의 음악을 담당한 이동준씨가 작곡을 맡았다.
가수 박화요비와 박완규도 출연키로 해 벌써부터 화제가 된 작품이다.
문제는 창작 뮤지컬인 만큼 배우들의 음악적 완성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
‘오페라의 유령’이나 ‘토미’처럼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뮤지컬과 달리 창작 뮤지컬은 가사에 맞는 대본 수정 작업, 배우들의 발성 훈련(보이스 터치)과 코러스의 합창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컬 전체의 음악적 톤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감독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 뮤지컬 제작현실은 전문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연극하던 사람이 연출을 맡고, 대본을 쓰고, 심지어 배우로까지 출연하니까 뮤지컬이 자꾸 관념적이고 설명조가 돼요. 작품성격에 맞는 배역의 목소리 색깔은 무엇인지, 배우들의 음악적 에너지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쓸 틈이 없는 거죠.”
서울예술단 단원 60여 명이근 한 달째 낮 1시부터 밤 10시까지 맹훈련을 거듭하며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무대에 완성도 높은 ‘음악적 옷’을 입히는 것이다.
‘누구일까요’ ‘삼족오(三足烏ㆍ세 발 달린 까마귀 그림을 그린 고구려 깃발)를 꽂자’ ‘내 육신은 불타네’ 등 30여 곡의 분석과 솔로ㆍ코러스 연습은 기본이다.
고구려와 낙랑, 한나라의 대치기를 다룬 만큼 그 역사가 빚어내는 ‘남성미’를 노래와 음악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호흡을 강하게 하기 위해 연습장을 뛰어다니며 노래 연습을 하던 한 배우가 이 감독에게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묻는다.
“‘오래, 오래’ 할 때 톤을 바꿔야지. 아직도 그걸 모르겠냐? 다시 해봐.” 줄담배를 피워대던 이 감독이 또 한번 목소리를 높인다.
12월 29일~2002년1월 6일 평일 3시ㆍ7시, 토ㆍ일 3시ㆍ6시, 첫날은 낮 공연 없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23-0986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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