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되 무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언급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우선 김 대통령이 남북문제에서 욕심을 내지 않겠다는 절제나 인내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이 구상했던 남북관계의 비전과 시나리오를 임기 중에 어떤 일이 있어도 실현시키겠다는 자세를 접은 것이다. 의지의 포기가 아니라 속도의 조절, 현실의 인정으로 받아들여진다.
햇볕정책은 김 대통령에게는 단순한 정책을 넘어 평생 다듬어온 신념이다. 경의선을 연결하고 모든 이산가족의 교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북과 미국, 중국간 4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김 대통령 햇볕정책의 그랜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따라주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미관계가 꼬였고 남북관계도 답보를 면치 못했다.
최근 들어서는 금강산 관광사업, 이산가족 상봉 등 기존의 교류 협력조차 어려워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제6차 남북장관급 회담도 결실 없이 끝났다.
김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자신의 구상대로 진행되지 않는 국제적, 국내적 상황을 인정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추진 가능한 일을 하겠다는 보폭의 조절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와도 맥을 같이 한다.
총재직 사퇴는 정당 정치에서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에 전념하겠다는 것이지만, 그 저변에는 임기 말에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절제의 논리가 깔려 있다.
그 논리를 남북관계에 적용할 경우 '무리하지 않는 햇볕정책의 추진'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렇다고 김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지금의 교착국면에 방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김 대통령이 6차 남북장관급 회담이 아무 결실이 없었던 데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는 대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의지와 미련이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다만 달라진 점은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까지 북한을 대화의 틀에 끌어들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같은 변화는 김 대통령이 지난번 장관급 회담 때 다음 회담의 날짜도 확정해주지 않는 북측에 대해 결렬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이해했다는 데서 읽혀진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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