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24일 프랑스의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가 88세로 타계했다.클레망소는 자신의 이력을 의사로 시작했지만, 오늘날 그의 이름은 언론인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언론인이나 정치인으로서그의 노선은 비록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당대의 프랑스 국내 정치 지형에서는 늘 왼쪽에 있었다.
1871년 파리코뮌이 성립하기 직전에 파리제18구 몽마르트르의 구청장으로 선출된 그는 그 해 7월 급진공화당원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1893년의 파나마 사건에 휘말려 10년 동안정계를 떠났다.
파나마 사건이란 레셉스의 파나마 운하회사가 도산하기 전에 모집한 복권부 사채의 입법화 과정에서 국회의원 다수가 유대계 금융자본가에게 매수된 사건이다.
정계를 떠나 있는 동안 클레망소는 ‘로로르(여명)’라는 신문을 운영했다.
이 신문은 19세기의 마지막 10년동안 전 프랑스를 양분한 드레퓌스 사건에서 드레퓌스 옹호 여론을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로로르’는드레퓌스파 지식인들의 거점이었다. 에밀 졸라의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를게재한 것도 이 신문이었다.
클레망소는 1903년 상원의원이 돼 정계에 복귀한 뒤 내무장관, 총리 등을 역임하며 8시간 노동제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개선에 기여했다.
제1차세계 대전 중에는 총리 겸 육군장관으로서 대독 전쟁을 총지휘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 자신 성공한 정치인이었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클레망소의 생각이 호의적은 아니었다.
“당신이 아는 가장나쁜 정치인은 누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클레망소가 내놓은 답은 이랬다.“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이 놈이야 말로 제일 나쁜 정치인이라고 결정한 순간에 꼭 더 나쁜놈이 나타나니 말이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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