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11월23일 영국의 극작가 아서 윙 피네로가 79세로 타계했다.런던에서 태어난 피네로는 영국 근대 사실주의 연극의 개척자다.
19세기 영국 연극은 18세기 이래의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뤘다. 셸리, 키츠, 바이런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이 시극을 썼지만, 이 작품들은 뛰어난 문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1843년의 극장해방령이 그때까지 특허로써 영국 연극계를 지배하던 두 극장의 독점을 무너뜨리자, 그 이후 극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것은 대중과 연극 사이의 접촉면이 넓어졌다는것을 뜻했고, 관객들 가운데는 점점 멜로드라마에 싫증을 내는 사람이 늘게 되었다.
이런 정황을 배경으로 영국의 근대극이 태동했다. 상업주의 연극이힘을 얻고 있는 데 대한 반발로 일어난 레퍼토리식 소극장 운동도 근대극 수립의 한 밑바탕이 되었다.
피네로는 수습 변호사로 일하다가 배우를 거쳐 극작가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신산한 과거를 지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탱커리씨의 후처’(1893)다.
입센의 연극 세계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크게 히트해서 런던 극단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영국 사실주의극의 터를 다졌다. 영국에서는 1880년대부터 입센의 작품들이 번역돼 공연되고 있었다.
피네로는 평생동안 50여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가 주춧돌을 놓은 영국 근대극은 버너드 쇼 등의 작가들에 의해확고히 뿌리내렸다.
20세기 들어 연극은 볼거리를 찾는 관객들을 놓고 새로운 장르인 영화와 경쟁해야 했다. 그 싸움에서 영화의 승리는 확정적인 듯하다.
브로드웨이에서 아무리 많은 돈이 벌린다고 해도, 그것이 연극의 전반적 쇠잔을 막을 수 있을것 같지는 않다. 지금 살아있다면 피네로도 시나리오 작가가 됐을 것 같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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