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엔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였다면 2000년대는 청담동 명품가(街)다.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지만 로데오거리는 이젠 대중의 몫으로 남았고, 청담동 명품가는 유행창조와 브랜드로 로데오의 명성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동쪽으로 길을 건너면 왕복 6차로에 500여m길이의 청담동 압구정로를 만난다.
좌우측에 5~6층 건물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그 사이를 버스와 택시들이 뒤섞여 지나가고 있다. 언뜻 보면 강남구의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이곳이 ‘한국의 베버리 힐즈’로 불리우는 청담동이다.
■ 수입명품 고가의류점 줄지어 있어
귀족동네 청담동의 압권은 단연 압구정로 대로변. 이른바 명품의 거리다.
수입명품인 초고가 의류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다닥다닥 붙어 있다. 건물 외관은 저마다 하나의 커다란 장식품 같이 수려하다.
외벽 쇼윈도에는 최신 상품이 진열돼 있고 매장안에는 정장차림의 점원들이 한가로이 잡담하고 있다.
간판에는 영문 브랜드만 써 있을 뿐 한글은 찾아볼 수 없다. 무슨 상품을 판매하는 지 설명이 없으며 어떤 매장은 아예 쇼윈도도 갖추고 있지 않다.
전면이 꽉 막힌 철옹성 같은 외관에다 브랜드만 커다랗게 걸려 있는 곳도 있다. 이름만 보고도 모르면 들어올 자격이 없다는 자만심이 느껴진다.
되돌아보니 거리 전체가 사뭇 거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 핸드백 50만원선 신사복 150만원선
명품가에 들어서면 맞딕뜨리는 국산 브랜드 모피점. 고가 옷인 만큼 매장안의 고객들도 꽤나 부유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린다 김 선글래스로 유명해진 에스카다, 신창원 스웨터로 비유되는 미소니, 가짜상품도 알아준다는 프라다 구찌 루이비통 아이그너 켄조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한 곳을 들어가보았다. 신사복이 159만원에 구두가 56만원, 열쇠고리도 20만원선이다. 다른 매장을 둘러보았다.
여성코트가 248만원, 블라우스가 430만원, 핸드백이 59만원이다. 각 매장의 가격대가 대부분 엇비슷하다.
매장점원 최모(27ㆍ여)씨는 “단골 고객들은 30~40대의 젊은 손님들이고 대학생들도 더러 있습니다. 고객 1명이 한달에 1~2벌 정도를 사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청담동 명품가에는 초상류층만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전시된 옷들을 뒤적이다 입어만 보고 가는 ‘구경족’들도 상당수다.
최씨의 말. “구경만 하는 손님들이 무척 많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유행 상품을 알아보기 위해 오고 시장같은 곳에서 비슷한 옷을 고르기 위해 구경삼아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들은 과소비의 거리가 아니라 유행창조의 근원지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 매장 한 켠에서는 20대 여성이 점원에게 가격대를 물어보더니 수첩에 옷모양과 색깔까지 적어놓고 있었다.
김모(22ㆍY대 3년)양은 “별다른 고민없이 이곳 상품을 사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긴 하지만 그걸 과소비라고 손가락질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젠 명품구매도 하나의 소비패턴으로 자리잡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한 뒤 또다른 옷들을 탐구하듯 뒤적였다.
‘사치의 거리’ ‘과소비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청담동 명품가. 한편으로 비난의 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질시와 동경의 대상으로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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