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한마리 양 두마리‘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는 즐거운 믿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과 차가운 웃음을 거쳐야 하는지.
최근 출간된 ‘노박씨 이야기’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슬루페츠키(39ㆍ사진)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문학동네발행)는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는 짧은 이야기 모음이다.
7편의 에피소드에 담긴 상상력은 기발하고 천진난만하고 또 어이없이 서글프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칭얼댈 때는 양을 세어 보라고 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아홉 살소년이 밤새 헤아리던 양 중에 두 마리가 사랑에 빠졌다.
열 세번째 양과 열 네번째 양. 그렇지만 소년의 머리 속에서 양들은 휙휙 지나가 버린다. 함께 영화를 볼 수도 없고, 사랑한다는 말도 전할 시간이 없는 양들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난다.
그런데 양을 세던 소년에게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양들을 짝지어 주기. 평화롭게 사랑하고 새끼 양들을 낳는 사랑스러운 상상 이제 아이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고 두 마리 양도 행복해졌다.
그런 식이다. 사랑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다정하게 말을 나누고,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고, 부드럽게 쓰다듬는 중에 자라난다고 살그머니 알려준다.
살다 보면 불행에 불행이 더 해질때도 있다. 등에 헨켈 주전자 고리를 달고 태어난 거북은 찻주전자처럼 보인다고 놀려대는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딱하게 여긴 조물주가 보내준짝은 안타깝게도 ‘부엌을 빛내주는 영광, 헨켈 처녀 거북주전자’였다.
자비롭고 거룩한 신도 실수를 한다. 그러니 마음 착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조물주의 황당한 장난이라는, 그런 게 세상살이라는 낮은 속삭임이 들린다.
작가는 조물주처럼 작은 장난을친다. 공주가 키스해줘야 마법에서 풀려나 사람이 될 수 있는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를 비틀어 버린다.
공주를 기다리면서 품위를 지키던 개구리 왕자가 젊은 개구리 아가씨를 만났다.
“꽤액?” “꽤액!” 같은 짧은 대화를 주고받던 둘은 어느날 긴 얘기를 시작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품기 시작한다.
어느날 찾아온 공주가 키스를 하기 직전 왕자는 공주를 뿌리치고 늪 속으로 뛰어들었다. 때로는 공주처럼 화려한 위엄보다 개구리 같은 평범한 사랑이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개구리 왕자처럼 슬픔과 아픔과 고독을 겪으면서 걸러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다.
미술을 공부하고 재즈음악을 사랑하는 슬루페츠키는 재기 넘치는 작가이다. 그는 ‘넘치는 생각 활용 모임’을 만들고 ‘기발한 발명그룹’을 이끌었다.
‘들고다니는 횡단보도’는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이라고 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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