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영화사 ‘봄’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최초의 네티즌 펀딩을 실시했다.제작 중인 영화 ‘반칙왕’의 투자자 공모를 인터넷으로 한 것이다. 1억 원을 모으는 데 40여 일이 걸렸다.
참여자 200명은 주식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1인당 투자 금액 상한은 50만 원. 결과는? 투자자들이 돈을 벌었다. 수익률은 투자액의 197%였다.
이후 16개월 만인 올 3월 영화 ‘친구’의 1억 원 네티즌 펀딩에는 100명이 참여해 단 60초 만에 마감됐다.
9월말 극장 수입을 기준으로 200% 수익이 발생했다. 12월초 일단 배당할 예정이고 비디오 및 해외판권 등 나머지 수입도 또다시 나눠준다. 전체 수익률은 300%로 예상된다.
■'주식으로 까먹은 돈, 영화로 벌어보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네티즌 펀드를 부추기는 말이다. 실제로 ‘반칙왕’으로 시작한 영화 펀드는 짭짤한 수익률을 안기면서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JSA’ ‘리베라 메’‘휴머니스트’‘엽기적인그녀’‘인디언썸머’‘파이란’ 등이 네티즌 투자를 받은 개봉작이었다.
개봉 예정인 한국판 블록버스터 ‘2009 로스트 메모리즈’‘성냥팔이 소녀의재림’도 투자를 받았다.
영화 펀드가 인기를 끌자 가수 조관우의 6집 음반이 5,000만 원의 네티즌펀딩을 실시했고, 출판업계에서도 이를 도입했다.
네티즌 펀드에 날이 갈수록 돈이 몰려들고 있다. 잘만 하면 시중 금리와는 비교도되지 않을 만큼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고 망해도 주식처럼 휴지 조각은 되지 않는다는 심리 때문이다.
올 들어 영화 10편에 5억 3,000만원을 공모한 펀딩 업체 인터파크가 투자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92%가 19~35세의 젊은 층. 1인당 평균 투자액은 40만 원이었다.
■네티즌펀드, 빛좋은 개살구?
하지만 네티즌 펀드가 결코 ‘대박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전체로 놓고 보면 오히려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다. 주식보다 예측이 쉽긴 하지만 그래도 수익을 올리는 작품보다는 손해를 보는 작품이 더 많다.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파이란’이나 흥행작으로 기대되었던 ‘툼 레이더’ 등도 손해를 보았다.
‘휴머니스트’처럼 60%라는 높은 손실률을 기록한 작품도 있다.
설사 수익을 올리더라도 다른 펀드와는 달리 최고 27.5%의 높은 세금을 물어야한다. 또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소액 주주운동처럼 출발했지만 당초 지향했던 기획 및 제작 과정 참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밖에 불충분한 정보와 자료, 제작사마다 다른 정산 방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반칙왕’은 해외 판권 및 비디오 판매 등을 제외한 극장수입만을 투자자들에게 분배했고, ‘친구’는 DVD 등 영화의 기타 부가가치 판매까지 수입에 산정했다.
정산과정에는 아예 참여할 수도 없다. 1초를 다투는 선착순 모집에서 ‘묻지마 투자’를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네티즌 펀드에 참여하려면 작품에 대한 분석보다는 마우스를 누르는 손가락이 빨라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네티즌 펀드를 단순히 구전 효과를 위한 마케팅 방법으로 여기는 제작사와 수수료에만 의존해야 하는 공모사 때문이다.
네티즌 펀드에 돈이 몰리면서 부실한 업체들도 난립하고 있다.
피해는 결국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생긴 지 2년 남짓밖에 안 된데다 다른 나라에는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네티즌 펀드는 현행법상 적용시킬 만한 금융규제법령이 없다.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원금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업체들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사기를 당하더라도 투자자는 아무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덩치 키워야 '황금알 낳는 거위'
심마니 엔터펀드는 최근 5억 원 규모로 영화 ‘두사부일체’의 VIP 펀드를 공모했다.
심마니가 특허출원까지 한 VIP 펀드는 선착순 방식이 아닌 회원제. 일정 기간 동안 신청을 받은 다음 회원 가입 순서대로 기회가 주어진다.
공모 금액도 1,000만 원~5억 원. 현재 400여 명의 회원을 모집했고 벌써 5억 원이 훨씬 넘는 돈이 모였다.
심마니 엔터펀드 허태규 팀장은 “기존 네티즌 펀드의 단점이 적은 액수의 공모금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VIP 펀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던 ‘네티즌 펀드와 엔터테인먼트투자’ 심포지엄에서 여한구 Y2시네마 대표는 “영화에서 1억 원은 제작사 입장에서는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각종 정보가 투명화하려면 네티즌 펀드가 적어도 제작비의 20% 정도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로 나왔던 임복순 인터파크 대리도 “공모사들이 투자자들의 요구를 가장 민감한 부분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저예산 영화나 수입영화, 음반, 공연 등에 더 많은 네티즌펀드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투자 금액을 높여 제작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려면 지금처럼 작품 완성이후가 아니라 제작 중에 펀딩을 해야 한다.
불확실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상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이 더 커지는 셈이다. 만일 10억원을 넘기면 주식 공모처럼 되어 재정경제부에 신고를 해야 하는 등 법적인 문제도 있다.
또 저예산 영화나 음반 등은 한국 영화만큼의 수익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약점이 있다.
심마니 영화투자정보교류동호회원인 신용재씨는 “네티즌펀드가 문화산업 전반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지닌 만큼 보다 체계적으로 법적ㆍ제도적 시스템을 정비하고 독립영화 및 작품성 있는 문화 콘텐츠 제작의 활성화 및 세액 지원 등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가 살아야 네티즌 펀드도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 펀드란
영화 등 문화 상품의 제작자나 투자자가 주로 전문업체를 통해 네티즌들로부터 주식공모 형태로 투자금을 유치하고 흥행 성적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사업 모델.
1999년 영화 ‘반칙왕’부터 시작되었으며 유일하게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방식이다.
공모 금액이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는 않으나 대개 영화는 1억~2억 원 규모, 음반 및 공연 등 기타 분야는 그 이하로 공모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