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홍윤오기자 제4信…美공습 목격記19일 저녁 6시.파키스탄과의 국경을 눈 앞에 둔 아프가니스탄 토르크햄 지역.카불에서 무리하게 이 곳까지 달려온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점점 차량과 인적이 끊기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몰래 사라져버린 안내원이 야속했다. 그는 잘랄라바드에서 또 한차례 돈만 받아 챙긴뒤 파키스탄 국경까지 동행키로 한 약속을 어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국경검문소 주변엔 불빛 하나없다. 검문소에 들어서니 높이 3m,폭 4~5m의 커다란 녹색 철대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이 관문을 지나도 30km가량 더 가야 파키스탄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는 '안전지대'로 넘어간다. 그 곳까지는 파슈툰족의 부족 자치구역.파키스탄 국경수비대의 안내를 받지 않고는 아무도 지나칠 수 없는 지대다.
속수무책이었다.철문 옆의 한 장교가 "차량도 없는데 1시간 걸리는 길을 어떻게 가냐"며 통과를 거부했다. 컴컴한 국경지대에 영락없이 갇혀버렸다.멍하게 서 있으니 서툰 영어를 하는 경비 책임자란 사람이 다가왔다 .다짜고짜 내게 건넨 "한국은 좋은 나라"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그는 미소를 띠며 아무도 해칠 사람이 없으니 무서워말고 하룻밤 지내고 가라고 달래주었다.
순간 밴과 택시 등 차량 2대가 나타났다. 프랑스 TF1-TV기자 일행 6명이었따.역시 철문 앞에서 길이 막힌 그들과 함께 빈 막사 건물로 안내를 받았다. 호롱불과 손전등 외에는 완전 암흑이었다 .프랑스측 안내원이 어디선가 준비해 온 현지식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맨바닥에 누우려니 프랑스 기자들이 남은 슬리핑백 하나를 빌려준다.잠이 안오고 걱정도 돼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은하수가 한창이다.이렇게 갇혀 밤하늘을 쳐다보는 신세가 문득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런 한탄도 어설픈 낭만이었다.
겨우 선잠이 들었나 싶을 때였다.꿈결에 "슈슝"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꽈과광"하는 불벼락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폭음이 가슴에 내리 꽂히고 뇌를 관통하는 기분이었다.건물 전체가 흔들리고 유리가 떨어져 나간 창문으로 매캐한 흙먼지가 온통 들어찼다. 불과 3km 떨어진 구르키 마을에 폭격이 가해진 것이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탈레반이 사라진 이 곳에 대한 공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잘랄라바드에서 경험을 했던 폭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다음 폭탄은 나에게 정통으로 날아올 것이라는 살벌한 공포감이다.모두가 같은 느낌인 듯했다.프랑스인들은 흙먼지가 날리는데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3시30분께였다.다시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꽝,꽈르르릉꽝,콰쾅"폭음이 울렸다. 두번째는 소형폭탄이 10여 발 터졌다.콩닥거리는 가슴을 싸매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혼자 '잘못하면 여기서 죽는구나.왜 여기다 폭탄을 퍼붓는 거야'란 저주를 퍼부었다.
폭음이 그치자 여유가 조금 돌아왔다. '집속탄이 분명해.첫번째 큰 굉음은 모탄이고 다음 폭발음드른 자탄들일거야.비행음이 안들리는 것으로 봐서 F-117같은 스텔스기가 고공에서 투하하는 것이겠지'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잠시후 시작된 3차 폭격이 모든 상념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당하는 쪽에서 경험한 폭격은 잔인하고 집요했다.
날이 밝자 국경으로 시신과 부상자가 실려나갔다. 시체 1구는 월경을 거부당했다.어제 밤까지 미소짓던 아프간 경비책임자는 노발대발 하고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도 "탈레반은 1명도 없는 민간인 지역에 왜 폭탄을 떨어뜨리는지 모르겠다"면서 "미국은 모든 무슬림을 이런식으로 죽일 것"이라며 통곡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취재를 하려 하자 총을 든 무자헤딘이 거세게 밀치며 경고했다.
경비벽 샤무드(27)는 "그 지역에 원래 탈레반 기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수했다"면서 "그들(미국)이 또 오폭을 해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밤에 17명이 숨지고 49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기자가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은 시체 1구와 부상자 4명이었다.
살벌해진 검문소 분위기 속에 겨우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그것도 노란머리,파란눈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함께 있던 프랑스 기자들은 여전히 입국을 거절당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토르크햄(아프간쪽 국경)=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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