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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기자 피살소식에 "아…" 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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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기자 피살소식에 "아…" 철렁

입력
200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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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홍윤오기자 목숨건 아프간 취재기카불을 벗어난 바로 그날인 19일 가슴 철렁한 소식을 접했다. 내가 단신으로 오갔던 길, 카불에서 잘랄라바드를 거쳐 토르크햄 국경 검문소에 이르는 유일한 그 도로 위에서, 이날 카불로 향하던 이탈리아 여기자 등 기자 4명이총을 맞아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이름과 사진을 보니 모두 함께 파키스탄 페샤와르를 떠나 잘랄라바드에서 취재경쟁을 벌이던 기자들이었다.

외국 동료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뒤늦게 나의 무모함, 그리고 행운을 절감했다.

아프간 낭가하르 주지사로 추대된 하지 압둘 쿠디르의 인솔로 지난 15일 잘랄라바드에 함께 도착한 100여명의 각국 기자들은 다음날부터 뿔뿔이 흩어져 카불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쿠디르는 신변안전문제를 거론하며 잘랄라바드에 머물것을 권고했다. 그는 “실제로 BBC기자가 카불로 가던 중 운전사가 총에 맞아 숨지고 기자는 실종됐다는 첩보가 있다”는 얘기도 했다.

기자들은 그룹으로 몰려가는 게 안전하냐,개인별로 가는 게 안전하냐 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결국 2~6명씩 모여 따로 출발하는 분위기였고 기자도 함께 가자는프랑스 여기자의 제의에 응했다. 하지만 이 여기자는 갑자기 출발을 포기했다.

단신으로, 통역 1명만 대동한 채 22만㎞를 뛴 낡은 토요타 코롤라 택시를 잡아타고 카불로 향하게 된 전후사정은 이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근사한 지프나 밴의 행렬보다는 낡은 현지 택시 한대가 더 안전했던 것 같다. 잘랄라바드에서 카불까지는 갈때나 돌아올 때나 외길이다.

처음엔 멀리 회색빛 산맥들이 보이는 사막지역을 달리다 깊은 계곡길에 들어선 뒤 이윽고 관문을 통과하듯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면 그곳에 카불이 있다.

거리는 약170~180㎞.정상적인 도로라면 2시간 30분이면 닿는 거리다.

하지만 카불 입구까지는 도로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비포장’도정도 나름이지, 곳곳이 폭격을 맞은 듯 패고 갈라져 차가 제대로 달릴수 없다.

동행한 통역 아만 칸(30)은 “소련군탱크가 수없이 지나다니면서 길이 이처럼 망가졌다”고 말했다. 전쟁이 국토를 ‘유린’한다는게 바로 이런 것이란 실감이 났다.

차는 고작해야 시속 20~30㎞의 속력밖에 낼 수 없어 카불까지는 최소 6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훈련소의 개스실 처럼 자욱한 먼지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지옥길 6시간’이다. 무장괴한의 습격도 문제지만 잘못하면 타이어가 터져버리거나 절벽길에서 추락할 수도 있다. 쿠디르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배경을 직접 가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잘랄라바드를 벗어난 직후 다룬타 지역에 접어들자 오른쪽에 강이 나타나면서 그럴듯한 사막풍경이 펼쳐졌다. 강 건너 언덕위로는 그 유명한 알 카에다의 다룬타 훈련캠프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윽고 왼쪽으로 고산준령과 이어지는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을 끼고 한참을 달렸다. 그중 한 곳이 토라보라산으로, 이 지역 출신인 운전사 샤예즈(34)는 “이 지역 최대 알 카에다 조직 본부가 있는 곳이어서 오사마 빈 라덴도 한때 머물렀었다”고 말했다.

순간 이런 곳에서 차가 갑자기 서버리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중간 지점에 있는 유일한 마을인 소르비 마을에 잠시 차를 세우고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총을 든 무자헤딘들도 다가와 “헬로우, 웰컴”이라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윽고 그 중 험상굳게 생긴 무자헤딘이 “왜 여기서 사진을 찍고 난리냐”고 으르렁 거렸다. 속수무책으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한참을 더 가서 고갯길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꼬마들이 10㎙ 간격으로 구걸을 했다. 저마다 삽이나 곡괭이로 길에 모래턱을 만들어 차들이 서행하도록 한뒤 창문틈으로 손을 내미는 식이다.

이윽고 마지막 관문인 좁은 절벽길로 접어들자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실제로 절벽아래 굴러떨어진 미니밴 형 지프가 흉칙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운전사 샤예즈는 “카불이 함락하던14일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오던 알 카에다 조직원 차가 돌 난간을 부수고 추락한 것”이라며“6명이 전원 즉사했다”고 전했다.

왜 이곳이 군사적으로는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이고, 그 옛날 수행자들에겐 신비의 도시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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