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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韓流'에 이상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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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韓流'에 이상 없나

입력
200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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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는 "21세기 국제 체제는 6개의 열강과 다수의 중진국ㆍ소국으로 이뤄질 것" 이라고 내다 보았다.열강에는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가 포함된다. 중진국ㆍ소국으로밖에 분류되지 못한 한국의 처지가 딱하고 서운하다.

또한 주변국인 중ㆍ일ㆍ러를 열강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 서늘한 경고처럼 들린다.

새뮤얼 헌팅턴은 여기에 이슬람을 추가하여 7~8개의 문명권을 설정하고 있다. 그가 그린 문명지도에는 한반도와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이 같은 '중화문명권'으로 칠해져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일본문화를 중화문명권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문명은 '문화'를 큰 글씨로 쓴 것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베트남과 우리는 상당히 다른 문화를 누리고 있을 것 같은데도, '문명'이라는 넓은 밭에서 자라는 곡식은 정서적 공감을 키우는 모양이다.

같은 문명권에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가요 등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인 '한류(韓流)'가 자랑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한류는 어느덧 한중 정상회담의 화제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왕이취안 베이징대 교수에 따르면 그러나 "한류 열풍은 일부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 이다. 기성세대는 한류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류가 충분히 성장하기도 전에, 최근 1차 위험 신호가 온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

이상 조짐은 한류의 본류인 국내 대중문화에서 나오고 있다. 먼저 최근 흥행되는 한국영화가 대부분 조폭 영화라는 점이다.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같은 영화들이 조직 폭력배를 등장시켜 웃기거나 조폭을 미화하고 있다.

반면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같이 작품성을 추구한 영화는 며칠 안 돼 간판을 내리고 있다.

일부 영화의 '대박'은 반갑지만, 그로 인해 '작은' 영화가 희생되는 문화적 편식은 위태롭다. 문화적 다양성을 해침으로써 결국 예술 자체를 피폐화 시키기 때문이다.

감독 장이모와 여배우 궁리로 대표되는 중국은 사실 '영화 강국'이다.

중국에 한류가 정착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이 좀더 다양하고 삶에 대한 해석이 깊이 있어야 한다.

가요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이후 우리 음악시장은 댄스음악의 범람으로 인해 10대 위주로 축소되었고 음악 자체도 하향평준화 했다.

댄스음악의 현란함과 발랄함으로 중화문명권 젊은이의 시선을 잡은 것은 잘 된 일이지만, 그들의 한류 취향이 바뀌기 전에 다채로운 형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한류를 직접 뜨겁게, 혹은 차갑게 하는 것이 연예인이다.

그러나 우리 배우나 탤런트, 가수의 사생활은 불안하기만 하다. 연예인의 섹스비디오, 마약 복용, 대마초 흡입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개월 간 마약류에 손을 대다가 적발된 연예인은 301명으로 전년에 비해 4배나 늘었다고 한다.

최근 대만의 한 스포츠지는 탤런트 황수정의 히로뽕 사건을 큰 기사로 다루면서 '옥녀(玉女)가 아니라 독녀(毒女)'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그 전 중국의 한 방송인은 "중국 10대는 인터넷으로 한국 연예인들의 얼굴이 성형수술한 것임을 알고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한류의 수심은 아직 얕아 보인다. 한류가 우리에게 각별한 것은, 그런 문화 취향이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선입견을 평생 동안 좌우하기 때문이다.

깊은 강이 소리 없이 흐르듯이, 대중문화의 표면 아래로 순수예술도 깊이 흐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류는 우리 문화가 세계화하는 큰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역사의 지형을 높이 날면서 우리 문화권에서 한류의 물길이 막히고 굽이치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한류 열풍은 어느날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박래부 심의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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