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는 추억 속의 음식이다. 생일이나 졸업식 같은 중요한 날이 되면 ‘칼질하러 가자’는 말에 모두들 따라 나선 기억이 새삼스럽다.레스토랑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 들어가면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기분. 하지만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은 돈가스 하나였다.
수프가 나오고, 샐러드를 곁들여 오른손에 칼을 들고 왼손에 포크를 잡고 고기를 자르던 느낌은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무언가 큰 일을 치른 느낌. 한끼 식사로는 대단한 호사였다.
이제 돈가스는 그런 고급 음식은 아니다. 허름한 한식당에서도 큰 접시를 다 채울 만큼 넉넉한 크기의 고기를 튀긴 돈가스를 5,000~6,000원에 팔고 있다. 전문점에 가면 먹기 알맞게 잘라진 다양한 종류를 맛볼 수 있다.
돈가스는 서양 요리인 포크 커틀릿(pork cutlet)에서 유래했다.
돼지고기를 기름에 살짝 튀겨내는 요리였다. 이것이 일본화하면서 돈가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서 돼지고기의 두툼한 육질을 살리면서 기름기 밴 고기 특유의 느낌을 없애기 위해 튀김 옷을 입힌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돈가스는 두툼한 육질의 돼지고기를 씹는 맛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었다.
지금은 조리 포인트가 달라졌다. 바삭바삭 씹히는 적당한 튀김 옷의 맛이 돼지고기 육질과 함께 살아나야 한다. 돈가스의 참맛을 살려주는 맛집은 다양하다.
맛있는 돈가스집을 꼽을 때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옆에 자리한 본까스(02-722-0358)를 빼 놓을수 없다.
돼지고기 안심으로 만든 히레까스와 등심으로 만든 쫄깃쫄깃한 로스까스가 대표 메뉴.
히레에는 순살코기가 들어있지만 로스에는 기름진 부위가 섞여 있다. 어느 집에나 있는 메뉴지만 튀김 옷의 기름기가 다른 곳에 비해 적어 느끼한 맛이 덜하다.
튀김 옷이 눅눅하지 않고 바삭바삭한 느낌이 들어 베어 무는 맛도 일품이다. 샐러드 위에 뿌려먹는 새콤한 소스도 이곳만의 비법.
서울시청 후문에 자리한 사보텐(02-776-4510)은 일본식돈가스의 맛을 제대로 살린 곳.
곱게 간 시원한 무가 소스로 얹혀진 오로시 로스카스와 담백한 히레카스 위에 고급 모짜렐라 치즈를 얹어 살짝 구워낸 그릴 치즈 카스 정식이 색다르다.
특히 그릴 치즈 카스 정식은 고기 맛과 함께 치즈의 쫄깃쫄깃함이 더해져 씹는 맛을 최대한 살렸다.
돈가스 집이 유난히 많은 명동에서도 명동돈까스(02-774-5400)는 한국식돈가스의 표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튀겨낸다. 남대문 신세계백화점 맞은편 명동의류 옆에 있다. 고기 위에 치즈를 얹고 튀긴 코돈부루가 대표 메뉴다.
1층에서는 일본식 라면을 팔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가야 제대로 된 돈가스를 맛볼 수 있다. 두툼한 고기 육질을 씹는 맛이 일품.
퇴계로에서 대한적십자사를 지나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의외로 돈가스 집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집은 남산 돈까스(02-777-1976). 택시기사들이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위해 즐겨찾는 곳이다.
까다로운 그들의 입맛을 맞췄다면 그 맛은 이미 일정수준에 오른 것이 분명하다.
히레니 로스니 어려운 말이 붙지 않는다. 아무런 수식어가 없는 돈가스가5,000원.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남산의 가을 풍광을 함께 보는 재미라니.
이밖에도 성북2동에 있는 오박사네 돈까스(02-3673-5730)는 미리만들지 않은 돈가스가 주문 즉시 나온다는 시간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맛이 뒤떨어지지 않는 비결이 궁금증을 유발한다. 한국식 돈가스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자부하는 서호돈까스 주방장 출신의 사장이 운영하는 문정동 돈까스닷컴(02-443-4797)과 논현동 나산백화점 뒷골목에 있는 하루야돈까스(02-2256-3700)도 맛하나로 살아남은 곳이다.
■제대로 즐기려면
▲돈까스의 맛은 고기 자체에서 나온다. 소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여부가 중요한 포인트. 고기 자체의 맛이 소금의 양에 따라 달라진다.
▲튀김 옷에 기름이 너무 많으면 눅눅해져서 맛이 달라진다. 주로 느끼한 맛이 나기 때문에 적당량의 기름을 사용해 튀겨야 한다.
▲돈까스 위에 소스를 뿌리면 튀김 옷이 눅눅해진다. 바삭바삭한 맛이 덜하기 때문에 소스 맛 때문에 고기 본래의 풍미를 잃을 수 있다. 원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적당한 크기의 고기를 간장 소스에 찍어먹으면 된다.
▲요즘 돈까스에는 야채가 함께 나온다. 소스를 뿌리면 야채의 숨이 죽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 누글누글한 느낌. 한 입 만큼의 양을 젓가락으로 집어 소스를 뿌려 먹어야 한다.
서울시청 후문 근처 사보텐의 로스카스 정식.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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