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청담동의 한 샌드위치집에서 디자이너A씨와 만나기로 했다.그날 따라 A씨는 금세 나타나지 않았다. 기분 좋은 빵 냄새가 배어있는 샌드위치 집 풍경이 소담스러워 여유로운 기분으로 기다렸다. 적어도 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세 여자가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순간, 협찬 광고로 도배를 한 권투장의 라운드 걸이라도 나타났나 싶었다.
저마다 머리에는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선글라스, 어깨에는 로고가 무늬처럼 도배된 커다란 숄더 백을 둘렀다.
터틀 네크를 입은 가슴에는 브랜드 네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허리띠 버클은 마치 커다란 로고 브로치 같았다.
신발마저도 다른 옷들에 뒤질세라 브랜드의 심볼이 달려 있었다.
마치 로고나 브랜드 네임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은 결코 구입하지 않겠다고 맹세라도 한 듯했다.
그들은 ‘라운드 걸’답게 오직 브랜드 얘기뿐이었다. 스타일, 색상, 아이템에 대해서는한 마디도 없었다.
젊은 여성들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브랜드 이미지가 주요한 자산인 현대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일.
또 슈퍼 브랜드를 창조하는 기업이 곧 일류 기업이 되어버리는 현실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패션은 결코 브랜드의 조합이 아니다. 브랜드 충성도가 개인의 스타일 창조를 위한 주관적인선택이 되어야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객관적인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A씨는 30분이 지나서야 허겁지겁 나타났다.
버스가 늦게 왔다는 어줍지않은 변명을 들으면서도 라운드 걸을 보고 가신 입맛이 그를 보자 다시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늘 변치 않는 그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 때문이었지만.
/ 베스띠벨리 디자인실 정소영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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